기업들이 자사제품의 광고를 하나의 광고회사에 맡겨오던 관례에서
탈피, 품목별로 여러 회사에 나눠주는 멀티대행사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광고사간의 경쟁심리를 자극시켜 보다 나은 크리에이티브나 서비스를
이끌어내고 판매량도 늘려보자는 의도다.

광고사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외부 경영자원인만큼 "이용할수 있는
자원은 최대한 이용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광고주가 거래할 수 있는 광고업체수를 2개 이하로 제한하던
품목대행규제가 철폐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OB맥주는 작년말 주력제품인 "넥스"의 광고를 계열 광고사인 오리콤에서
금강기획으로 넘겼다.

이 회사는 이로써 OB라거와 카프리는 오리콤이, 넥스는 금강기획이,
생맥주는 맥켄에릭슨이 광고를 각각 나누어 맡는 3두체제를 갖췄다.

최상진 OB맥주 상무는 이와 관련, "멀티브랜드 전략에는 멀티대행사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OB맥주는 그동안 하이트맥주의 돌풍을 차단하기 위해 OB라거 카프리 넥스등
다양한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놓은 멀티브랜드전략을 펼쳐왔다.

맥주시장을 여러개의 군소시장으로 분할해 경쟁제품이 차지할수 있는
시장의 크기 자체를 줄여버린다는 포석이다.

멀티브랜드전략은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하고 특정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만큼 시장별로 다른 마케팅전략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농심은 작년 7월부터 신제품 광고를 대홍기획과 동방기획 양사에 경쟁
프리젠테이션(광고시안 설명회)을 거쳐 나눠주고 있다.

"당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북한보다 자유경쟁의 남한체제가 효율적인
것과 같은 이치 아니냐" (광고기획팀 강성훈차장)는게 농심측의 설명이다.

이랜드도 자사의류중 로엠 헌트는 LG애드, 쉐인 언더우드는 오리콤,
브렌따노 코코리타는 동방기획 등 3개사에 나눠주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LG애드(베아제 우루사 지미코프 콜킥), 금강기획(에너비트),
제일기획(헤모큐) 등을 동원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멀티대행사 전략은 대기업사이에 하우스에이전시(House Agency)관행이
없어지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삼성전자가 제일기획에 맡겨온 가전제품중 냉장고를 웰컴에 넘긴 이래
LG화학 제일제당 빙그레 등이 일부품목을 개방했다.

물론 품목별 대행현상은 광고주의 필요가 아닌 광고사의 "1업종 1광고주"
원칙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광고주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광고회사의 생리상 경쟁기업의
광고를 동시에 맡는게 힘든 것이다.

올해초 풀무원이 화장품부문의 광고를 금강기획에 넘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

풀무원 이효율이사는 "창사이래 제일기획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이 회사가 코리아나 화장품을 이미 맡고 있어 난처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우리로서도 다양한 광고사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멀티대행사 전략으로 광고사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언뜻 "하청업체 길들이기"로도 비쳐지는 이 전략의 유행으로 광고사들은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더욱 받게 됐음은 물론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게
됐다.

"경쟁프리젠테이션은 실컷 시키면서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보전해주는
리젝션피(Rejection Fee)를 받았다는 기업은 못들어봤다"는게 광고사들의
불만이다.

LG애드 이강원부장은 멀티대행사전략이 "국내 기업의 생산품목이 전문화
되지 못한 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전제, "개별품목의 매출증대에는 효과적
일지 모르나 전체적인 기업의 이미지 관리나 업무의 효율성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