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수상] 대학의 고민과 활로 .. 전철환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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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출범이후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이대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의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내외적으로 대학시장도 개방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데다가 베이비붐시대
이후의 대학입학생시대로 접어들면서 조만간 입학생수가 줄어들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아탑에 안주하는 수준으로는 문을 닫는 대학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인력 수요처인 경제계는 그들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대학들에 "질 높은 인력을 길러내라"고 요구한다.
그것도 채용과 동시에 당장 현장에서 일할수 있는 기술과 기능을 지닌
졸업생을 배출해 주길 바란다.
요즈음 사회의 도덕률이 크게 떨어지고 사람들의 인성이 거칠어져서 가진
것 많고 교육수준도 높은자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자 "전인적
인격을 지닌 졸업생을 길러내라"는 요구도 곁들인다.
이 요구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품성과 기능은 이 사회 경제를 떠받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활 단4년동안에 전인적 인격과 높은 기능, 그리고 기술을
지닌 졸업생을 기를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수 없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 대해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학자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듦을 부인하지 않는다.
학자집단인 교수에게는 또다른 압박감이 가중되고 있다.
개방시대에 있어서 세계최첨단수준과 견줄수 있는 연구능력과 업적, 그리고
흠없는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압박감을 수용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대학교육과 연구의 주체인 교수가 갖추어야 하는 일차적인 자격은
충분한 연구능력과 업적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충족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그동안은 최악의 권위주의적 반민주적 정치 경제사정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인 지금은 변명의 소지가 없다.
또 그런 소지가 생겨서도 안된다.
따라서 이제는 대학 스스로 21세기를 앞두고 직면해 있는 대학의 고민과
위기를 이겨 내고 활로를 찾아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얼핏보아 양립하기 어려운 사회 경제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각성과 개혁을 통해서 질 높은 개혁과 세계수준의 연구개발능력및 업적을
기르고 축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는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절묘한 조화와 세계최첨단기업의 경영력
못지 않은 효율성이 필요하다.
이제 대학경영은 단순한 상아탑보전과 지적호기심 충족수준의 중세 문예
부흥시대 감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경영자는 먼저 교수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진취적이고 역량있는 학생을
모아야 한다.
다음에는 이들에게 활력이 넘치는 장래의 비전을 제시하되 역동성이 최대로
발휘되는 학풍을 조성하여야 한다.
연구인력과 장비가 우수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스스로 정보전달주체가 되어야 한다.
안으로는 교육과 연구주체인 교수개인의 잠재력을 마음놓고 펼칠수 있는
열린 학풍과 믿음, 그리고 재정 경제적 여건을 조성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학생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이제 대학도 고립속에서 고고하고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개방가속과 함께 최소한의 정부규제와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자율경영시대
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경쟁은 심화되게 마련이며 대학이 살아가려면 대학경영자와 교수,
그리고 학생 모두가 일체가 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수 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학의 연구와 교육수준을 그 수요자인 정부와 기업,
나아가서는 사회전체가 요구하는 연구업적과 인력을 배양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대학인 모두가 이를 바로 보고 현실과 이상이 조화되는 지혜와
경영역량이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7일자).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의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내외적으로 대학시장도 개방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데다가 베이비붐시대
이후의 대학입학생시대로 접어들면서 조만간 입학생수가 줄어들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아탑에 안주하는 수준으로는 문을 닫는 대학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인력 수요처인 경제계는 그들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대학들에 "질 높은 인력을 길러내라"고 요구한다.
그것도 채용과 동시에 당장 현장에서 일할수 있는 기술과 기능을 지닌
졸업생을 배출해 주길 바란다.
요즈음 사회의 도덕률이 크게 떨어지고 사람들의 인성이 거칠어져서 가진
것 많고 교육수준도 높은자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자 "전인적
인격을 지닌 졸업생을 길러내라"는 요구도 곁들인다.
이 요구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품성과 기능은 이 사회 경제를 떠받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활 단4년동안에 전인적 인격과 높은 기능, 그리고 기술을
지닌 졸업생을 기를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수 없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 대해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학자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듦을 부인하지 않는다.
학자집단인 교수에게는 또다른 압박감이 가중되고 있다.
개방시대에 있어서 세계최첨단수준과 견줄수 있는 연구능력과 업적, 그리고
흠없는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압박감을 수용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대학교육과 연구의 주체인 교수가 갖추어야 하는 일차적인 자격은
충분한 연구능력과 업적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충족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그동안은 최악의 권위주의적 반민주적 정치 경제사정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인 지금은 변명의 소지가 없다.
또 그런 소지가 생겨서도 안된다.
따라서 이제는 대학 스스로 21세기를 앞두고 직면해 있는 대학의 고민과
위기를 이겨 내고 활로를 찾아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얼핏보아 양립하기 어려운 사회 경제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각성과 개혁을 통해서 질 높은 개혁과 세계수준의 연구개발능력및 업적을
기르고 축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는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절묘한 조화와 세계최첨단기업의 경영력
못지 않은 효율성이 필요하다.
이제 대학경영은 단순한 상아탑보전과 지적호기심 충족수준의 중세 문예
부흥시대 감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경영자는 먼저 교수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진취적이고 역량있는 학생을
모아야 한다.
다음에는 이들에게 활력이 넘치는 장래의 비전을 제시하되 역동성이 최대로
발휘되는 학풍을 조성하여야 한다.
연구인력과 장비가 우수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스스로 정보전달주체가 되어야 한다.
안으로는 교육과 연구주체인 교수개인의 잠재력을 마음놓고 펼칠수 있는
열린 학풍과 믿음, 그리고 재정 경제적 여건을 조성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학생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이제 대학도 고립속에서 고고하고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개방가속과 함께 최소한의 정부규제와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자율경영시대
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경쟁은 심화되게 마련이며 대학이 살아가려면 대학경영자와 교수,
그리고 학생 모두가 일체가 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수 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학의 연구와 교육수준을 그 수요자인 정부와 기업,
나아가서는 사회전체가 요구하는 연구업적과 인력을 배양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대학인 모두가 이를 바로 보고 현실과 이상이 조화되는 지혜와
경영역량이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