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있나 한번 확인해 보세요. 우리가 먼저입니다"(호남정유)

"계약했으니까 발표했지요. 일본신문에도 나올 거예요"(유공)

지난 13일 있었던 일로 유공과 호남정유의 자존심 경쟁의 일단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당시 "국내업체론 처음으로 일본에 휘발유를 수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를 각 언론사에 돌리던 호유는 마침 유공도 같은 내용의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발끈했다.

호유측은 하루전인 12일 일본 재팬오일사등과 계약을 마친 자신들과는
달리 그때까지 일본 전농등과 협의단계에 있던 유공이 "대일 휘발유 첫
수출이라는 선수를 뺏기기 싫어 초를 친 것"이라며 유공을 비난했다.

이에대해 유공측은 "만년 2위의 피해의식"이라고 일축했다.

국내 정유업계의 1,2위 업체인 이들 양사의 경쟁심리는 TV CF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호유 관계자는 "최근 유공이 TV광고내용을 바꾸면서 호유를 필요이상으로
자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공이 일급스타들을 등장시켜 만든 "엔클린" TV광고 내용은 이렇다.

새 차를 몰고 주유소에 들른 고객(이경영분)에게 "스타주유소"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쓴 주유원(박중훈분)은 귀엣말로 유공의 "엔클린"을 권한다.

"왜 꼭 엔클린이냐"는 고객의 질문에 종업원은 낮은 소리로 "새 차니까요"
라고 말한다.

문제가 된 것은 스타주유소라는 상호다.

호유가 정기적으로 우수주유소를 선발해 붙여주는 이름이 바로 "스타
주유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호유 주유소의 직원이 유공의 제품을 권한다는 내용이니 호유가
화를 낼수 밖에.

물론 유공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스타주유소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것 역시 2위 업체가 벌이는 "1위 흠집내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양사는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이좋게 국내 1,2위 자리를 지켜
왔다.

이렇게 "낯 뜨거운" 자존심 경쟁을 벌일 필요가 별로 없었던 것.

지난 94년 자사상표를 붙인 휘발유를 선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양사는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서는 서로 제품교환까지 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런 밀월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유가자유화 수출입자유화를 골자로 한 석유사업법 개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양사는 국내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방전에 돌입하게
됐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인 호남정유는 생산능력등 양에서는 한동안 어려울지
몰라도 질적으론 유공을 "금세" 따라잡을수 있다고 장담한다.

호유는 특히 지난 94년 브랜드 휘발유인 "테크론"을 선보이면서 대소비자
인지도를 급격히 높였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호유 관계자는 "그동안 40대30으로 고착돼온 시장점유율 구조가 깨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통산부통계에 따르면 호유는 지난해 휘발유시장점유율을 32%로
90년보다 2%포인트를 높인 반면 유공의 점유율은 2% 포인트 떨어져 38%로
낮아졌다.

호유는 특히 지난 92년 우수주유소를 선발해 시상하고 고객서비스팀을
발족한 것을 비롯 ISO9000품질인증획득(93년) 주유상품권도입(94) 불공정
거래센터운영(94년)등 각종 대고객서비스 부문에서 "업계 최초" 기록을
세워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질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셰어확대에 힘쓴다면 호유와 유공이 35대35의
대등한 시장점유율을 갖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호유의 주장이다.

유공도 올들어서는 내수 1위 수성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유공은 사실 그동안 호유의 추격을 무시해 왔다.

내수시장의 1위는 이미 굳어진 것이니 만큼 세계 메이저의 반열에 오르는
21세기 전략을 짜는데 더 집중해 왔었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올초 본사에 영업담당임원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고 전국
11개 지사장을 부장 및 차장급의 참신한 얼굴로 교체했다.

전국 주유소와 대리점의 영업사원 2천5백명에게 서비스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또 제휴카드 회원수도 연내에 3백만명이상으로 확대키로 목표를 높였다.

"집안단속"부터 해놓고 바깥일(글로벌전략)에 나서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유공은 또 휘발유 상표경쟁에서 테크론에 선수를 뺏긴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경유에선 "파워디젤"로 선공을 가했다.

외형적으로 아직까진 유공이 호유보다 앞서가고 있다.

양사의 증설물량이 본격 가동되는 올연말에 가도 정제능력은 하루 81만
배럴과 60만배럴로 유공이 호유를 크게 앞선다.

그러나 내수시장에선 모든 업체의 공격대상인 유공보다는 호유가 유리한
입장이란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내석유시장이 공급초과 상태인만큼 마케팅이 셰어를 크게 좌우할수도
있다는 것.

유공의 수성이 성공할지, 호유가 1위자리에 오를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