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동에서 밥을 얻어 먹은 친구들의 모임이 신교회다.

우리들은 휴전 직후에 서울에 있는 용산중학에 함께 입학한 동기들인데,
그즈음 너나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형편이 가장 좋았던
김철환군(안양본백화점 대표)은 종로구 신교동에 살았으며, 정원을 지나
별채에 방이 2개가 있어 이곳이 곧 우리들의 아지트가 됐다.

공부도 하고 아예 기식을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식사때가 되면 어머님께서
두 방의 식수 인원을 파악하셔서 식사와 간식을 주시곤 하셨다.

차비가 떨어지면 수도없이 타 썼고, 벽에 걸린 옷은 먼저 입고 가는 친구가
임자였다.

신동철(반옥건설 대표)군은 대학시절 등록금을 몇번인가 아버님한테 얻어
가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때는 물론 군에 갈때도 모두 신교동에 와서 신고를
하고 갔었다.

그러다 보니 용산중.고등학교 동기외에 대학 친구들이 몇명 불어났고,
평생을 형제같이 지내게 됐다.

1988년에 부친 김동진씨께서 급환으로 작고 하셔서 모두 모였는데,
오윤석((주)대군 대표), 김선권(환경프랜트 회장), 권오근(한국판매교육원
원장), 양승권(육군 소장), 김윤원(대원유리 대표), 김정부(삼원무역 대표),
이문삼(춘천, 자영업), 안응박(미국 이민)등 모두 12명이었다.

인자하신 어머님(김선율.78세) 생전에 더욱 돈독히 지내자고 긴급 결의하여
신교회가 정식 발족됐고, 자연스럽게 부부가 함께 참가하는 모임이 됐다.

회의 소집은 아무나 연락만 하면 모인다.

그러나 불문률이 있는데 반드시 문화행사(연극 영화 음악회 골프등)을
준비해야 되고, 저녁은 별식(수제비 칼국수등)으로 하며 간단한 자녀 선물을
준비하면 되지만, 함기회원은 반드시 신작개그(gag) 2편을 수집해서 발표
해야 한다.

처음 모임 당시는 좀 진한 개그를 할때면 부인들이 얼굴을 붉히더니 요즘은
한편 더 발표하라고 권유하게 됐고, 역시 신작개그 수집면에서는 김철환군의
부인이신 영화계쪽의 태현실 여사가 단연 장원이고, 다음은 대덕 롯데호텔
서만선 이사다.

만나면 전번 개그내용을 연상하고 웃기부터 하는 우리 신교회는 헤어질때
까지 폭소판이다.

요즈음 회원자녀 결혼식에 가면 이용재(주 신화건설 전무)군이 시작한대로
영화 연극 또는 음악회 관람권을 별도로 준비해 주는 관행이 생겼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이 폭소모임은 전국에서 해외에서 계속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