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5대 총선거도 불과 보름남짓 앞으로 다가오고 보니 "15"라는 숫자만
어쩌다가 눈에 띄어도 확 짜증이 일 정도로 진절머리가 난다.

누가 되든간에 어서 빨리 그 날이 와서 결판이 나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이게 어찌 필자 뿐일 것인가.

출마한 당사자들은 또 어떨 것인가.

밤낮으로 속을 끓이다 못해 당락 간에 어서 빨리 그 날이나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도 좋고, 공명선거도 좋고, "역사 바로 세우기"도 좋고,
그렇게 저렇게 쏟아내는 무거운 말씀들, 가벼운 말씀들, 한마디도 틀린 말이
없고 모두가 지당한 말씀들이지만 당사자나 투표권자나 그 모든 것에
진절머리를 내는 것도 어쩔수 없는 당장의 현실인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살이의 실제국면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런 진절머리 나는 일에서 가장 먼 쪽으로 한껏 시야를 한번
넓혀보자.

가령 예를 든다면 몇년 뒤면 쏘아 올리게 될 불과 너댓사람이 동승할
우주스테이션은 몇십년 혹은 몇백년 뒤에는 거의 틀림없이 몇만명 규모의
사람들이 그 곳에 아예 정착해서 살게 될 "우주식민지"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지구로부터의 탈출이, 15대 총선이다 뭐다 하고 아글타글들
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평상 감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한쪽에서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몇몇 선진국의 "우주센터"를 견학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재래적인 기준으로는 "망상"이라고 밖에 볼수 없었던 일들이 눈앞의 현실로
발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주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벗어버려야"할
것인지 하는 점에 자연스레 생각이 미치더라는 것이다.

극언을 하자면 우주에서 살자면 일단 지구에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체크되어야 한다.

"무의식"까지도 속속들이 파헤쳐져 최저한의 "안전성"이 체크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고유성"이 승인될 것이다.

좀더 부연해서 말하자면 그 곳에서 살 사람들 한분 한분의 모든 "몸짓"이나
행태까지도 세부세부 한구석도 놓침이 없이 일단 한번은 "의식화"과정을
거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폐쇄공간인 우주식민지에서는 지극히 사소한 "짓거리"도 엄청난
위험으로 이어질 경우도 있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엄격한 사전 점검이 절대로 필요해진다.

말하자면 지구에서의 삼엄한 사전 보안심사를 통해 우주속 삶에 알맞을
사람과 맞지 않을 사람을 가려내게될 것이다.

당장 지금도 우주는 그러한 삼엄한 심사과정에 통과된 사람들에게만 열려져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괴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우리가 우주
시대에 들어서 있음을 반증하는 셈인데, 어떤 관련학자의 설을 빌리면
46억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는 이때까지 5단계의 분화과정을 거쳐 왔다고
한다.

불덩이상태의 단계, 수혹성의 단계, 육.수혹성의 단계, 생물권을 분화시킨
생명혹성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인 문명혹성의 단계는 약1만년전
인간이 농경 목축을 시작한 때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한데 그 문명 혹성으로서의 지구는 지금 붕괴위기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인구는 21세기중엽에 이르면 100억을 돌파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될때 지구는 100년밖에 더 견디지 못한다.

그때에 인간권은 붕괴된다.

대강 이것이 지구혹성물리학자의 예측인데 그렇다면 벌써부터 일부 사람들
이 적극적으로 우주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상의 이
인간권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기인간권으로부터의 탈출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다시 말해 지구역사의 여섯번째 새로운 분화가 시작되었다는 조짐으로도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