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는 표류하는 배와 같다.

정치에 희롱당하고 경제를 소화하지 못한데다 문화와 정신의 뒷받침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향없이 뒤틀린 채 안정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슬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바로 잡을 스승마저 없고 희생당하는 이들의 소리도 들려지지 않는다.

정치가 너무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총선과 대선에 눈이 어두어 사회발전이 무엇인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대교체란 시퍼런 칼날을 마구 휘두르면서 정치판을 넘어 사회 각층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이 바람에 재계 언론계 학계에서 마저 정정한
사람들이 넘어지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3김청산도 좋고 20~30대 유권자의 표밭갈이도 좋다.

이러한 정치적 동기의 세대교체는 명분이 너무 벌어지고 넓어져 사회구조와
전통, 가치의식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

평생 쌓아 올린 전문지식과 경륜이 한창 피어오를 나이에 그만 날라가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 세대를 바꾼다하여 환경이나 복지등을 얘기하는
젊은이와 민주를 찾다 어디엔가 다녀온 젊은이들이 설익은 생경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회, 머리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채 말솜씨만으로 영상매체에서
인기가 있다고 해서 새로운 인물로 부각되는 사회, 학문보다 선거전략으로
표를 모은 인사가 정치판에서 학덕과 인격을 대표하는 사회.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요즘의 사회풍속도들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생활이 좀 나아졌다고 해서 사회규범을 뿌리부터 썩어 들게 하는 풍토가
자리잡아 간다.

절제의 자동제어장치도 없이 과부유 낭비 성개방 마약등이 판치면서 벌써
부터 선진국병을 앓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가족파괴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하면서 사회의 밑바닥까지
멍들어 가고 있다.

거기다 문화와 교육, 종교와 정신계마저 올바른 사회규범, 하나의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한채 중구난방의 제멋대로 소리만을 들리게 하고 있다.

이것이 옳으니 어렵지만 이 길로 서로 함께 걸어가자는 소리가 하나로
수렴되지 못한채 미국과 일본, 서양과 동양것들이 뒤섞이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와 경제, 문화와 정신에 도움을 받으면서,
또 서로 도움을 주면서, 안정과 발전을 가능케해야 할 텐데도 거꾸로 이들에
난타당하면서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모습을 거듭하고만 있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러한 사회를 경영할 의지와 방안을 생각하는 사회의
스승, 국민적 리더마저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새것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외양만 찾아다니며 생활의
질도 얼마정도 고려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말 올바른 것, 정말 우리가 지녀야 할 사회구조와 사회규범을 놓고 그림
을 그려보는 어른이 그리 많지 않음은 여간 안쓰럽지 않다.

변하고 바꾸는 것은 좋다.

그러나 올바르게 변하고 바꾸어야지 뒤흔들면서 갈피를 못잡게 해서야
될 말이 아니다.

또 내외여건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선 경제를, 다음에 정치를,
그리고 문화와 정신을 바르게 잡아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문화와 정신이 사회를 망치면서 변해서는 앞으로
영영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정신도 망가져 버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제국등 선진국을 다니다 보면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고민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사회전반에 무엇인가 모두가 동의하며 좋아하는 공동선, 사회규범,
사회구조, 사회질서가 손에 잡힌다.

이것들이 정치와 경제를 밑바침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해 준다.

예컨대 가까운 일본에 가보면 권 금 지가 분명하게 사회 분업화돼 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만으로, 금력을 가진 사람은 금력만으로,
지력을 가진 사람은 지력만으로 평생을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이때문에
사회안정과 발전이 기본적으로 가능하게 돼 있다.

이밖에 가정의례 같은 데서는 모두가 합의하는 바람직한 전통이 있어
이것이 낭비를 제거하면서 서로 웃을 수 있는 사회의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도 나름대로의 사회규범과 전통이 사회구조와
질서를 바탕하면서 안정되게 한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사회경영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경제는 겨우 살만한데 머무르고 있고 정치도 도려내야 하는 썩은
데가 한 두곳이 아니며 문화와 정신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연유로
사회경영에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흔들리고 힘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서지 않는 한 다른 모든 것도 올바르게 서지 못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요즘은 정치가 사회를 너무 난타하기 때문에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
정치에 조심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도 사회경영의 구상과 구체적 방향을
사회스승으로 하여금 한번 제안케 해 봤으면 한다.

바람직한 사회구조와 전통, 이런 것들을 이제 세울 때가 됐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