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년 가지 않아 21세기의 도래를 맞게 된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에는 결코 상상할수 없었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앞서거나 또는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도태되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도태의 대상은 국가일수 있고 기업일수도 있다.

대학과 개인도 예외일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러시아를 들수 있다.

고르바초프 전소련 대통령에 의해 소비에트연방이 와해된 이후 새로 들어선
러시아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속에 놓이게 됐다.

그럼으로써 과거 냉전시대에 누렸던 소비에트연방의 권위와 자존심은
지난날의 아련한 향수가 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 각국이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러나라에서 중요한 생존전략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것은 바로 국가간의
통상과 투자 확대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후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 투자및 무역부문에
있어서 정치-경제-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미국과 일본에 주로
의존해 왔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이처럼 심화됨으로써 결국 우리나라 경제는
구조적인 취약성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 88년 성공적으로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이같은 추세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과거 접촉이 금기시됐던 사회주의국가나 제3세계 국가로의 방향전환이
적극 시도된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 각국과 경제교류를 확대하는 놀랄만한 동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이후 활성화됐던 제3세계와의 경제-문화 교류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교류의 대상도 동남아시아 몇나라에 국한돼 버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몇년전에 중남미지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남미국가에 주재하던 우리나라 대기업 그룹회사의 현지 지사장은
"불경기 탓에 철수를 준비중"이라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우리나라 기업을
철새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의 부침에 따라 왔다갔다 한다는 불평섞인 지적이라는 얘기였다.

이에비해 일본은 경기침체에도 불구, 철수하지 않고 꾸준히 시장개척 활동
을 벌여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했다.

현지인들은 자기나라 경제여건이 어려워져도 그대로 남아 있는 기업들이
자기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는 판단에서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는게 그의
분석이었다.

남미주재 지사장의 지적은 결코 간단히 흘려버릴수 있는 사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당장은 약간의 손해가 있다고 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처신할 필요가
있음을 알수있게 하기 때문이다.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식으로 취급받아서는
곤란하다.

논의의 시각을 국내로 한번 돌려보자.

최근 우리나라에 와 있는 제3세계 외교관들은 무척 괴로워하고 있다.

높은 물가와 치솟는 임대료로 인한 경제적 고통과 함께 한국정부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정신적 고통도 겪기 때문이다.

물론 제3세계 가운데서도 중국 베트남, 그리고 최근의 경우 인도는 정부
당국및 기업의 관심이 높다.

이때문에 오히려 "밴드 왜건효과(Band Wagon Effect)"를 유발시키며 현지의
인건비 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밖에 우리나라에 있는 제3세계국가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통상및
투자부문에서 역할이 축소되면 결국 서울로부터 대사관 철수라는 불행한
결말이 올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비용측면에서 할일은 없는데 높은 임대료와 물가를 감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사관 철수라는 결말을 맞은 외교관,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해당국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남미지역에서 나타났던 감정들이 형성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이들 약소 저개발국가들의 어려움을 한쪽귀로 흘려
버리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은 숫자의 대를 위해 많은 숫자의 소를 희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수 있다.

한편 외국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관의 경우 외교전문가는 많아도
통상전문가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곱씹어 봐야 한다.

과거 외교관이라면 베르사유 궁전의 무도회나 생각하고 매일 저녁 화려한
옷을 입고 파티에만 참석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한때는 철없는 여성들의 남편감 선호도 1위에 오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이후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활발한 해외취업과 80년대
이후 해외유학및 여행자유화 바람으로 외교관의 선호도는 상당히 하락했다.

또 이미지도 무도회의 외교관으로부터 장사꾼 외교관으로 변화하도록
요구받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미국정부가 해외대사의 업무실적을
경제적인 면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앞으로 우리나라 외교도 통상측면을 중심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외무부 출신들만 참여시킬것이 아니라 통상전문가들도 과감히
기용, 활용함으로써 통상외교에서의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높아져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되어질때
조국의 선진화는 앞당겨질수 있다.

조국의 선진화를 앞당겨야 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