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을 꼽곤한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우선 신명이 난다.

그 일이 기다려지고 조금 더 잘 하고 싶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일
수밖에 없다.

나는 운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제 연배의 많은 분들이 그러하리라 생각되지만 특별한 취미 하나 없이
오직 직장에만 매달려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내에는 많은 동호인 서클들이 있고, 운동서클도 여럿
되지만 우선 모두가 만만치 않아 보였고 주로 젊은 사람위주로 서클이
운영되는 것 같아, 차일피일 선택을 미루곤 했었다.

그러던 중, 막 동호회를 발족한다는 야구회 얘기를 듣고는, 자청타청으로
야구회에 등록을 했고 유니폼이며 운동용구를 준비했다.

물론 내가 야구동호회에서 가장 연장자였다.

젊은 사원들과 함께 어울려 뛴다는 것이 나에게 벅찬 것만은 틀림 없다.

그러나 매주 일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주로 강남구 대치중학교)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러닝을 하고 공을 주고 받는 연습을 하며 땀을 흘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아,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에 참가하곤 했다.

그 누구보다도 멋진 신세대적인 취미생활이 생긴 것이다.

지난 여름 정식으로 발족한 태평양생명 야구회의 회원은 현재 30명 가량
되지만,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매주 일요일에 모이는 훈련이나 시합에
나오는 인원은 평균 20명정도다.

우리들은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직장인 리그에 참여, 1승3패라는 전적을 남기고 긴 겨울휴식에 들어갔었다.

물론 나는 타직장과의 시합 때 주전이 될 실력은 아직 아니다.

그것이 미안했던지 회원들은 나를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작전을 세워 달라고
졸라대곤 한다.

이제 긴 동면의 시간이 끝나고 대지의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다.

야구회도 다시 훈련을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이 봄 새로운 꿈을 꾼다.

최고령 주전선수가 되는 꿈과 이제 겨우 창단 2년인 우리 태평양생명
야구동호회가 감히 직장인 리그에서 우승하는 꿈을.. 그래서 우리 회원
모두가 함께 얼싸안고 좋아 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꿈을.

동호동락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