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3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독점국장이 기업으로부터 3천여만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 구속된 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공정거래위는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해도 이례적으로 여론의 전폭적
지지와 응원을 받는 기관이었다.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을 막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세워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소임을 맡은 곳이어서 국민적 기대가 컸다.

특히 93년이후 공정위 활동이 활성화 되면서부터는 경제활동과 관련없는
분쟁을 놓고도 곧잘 "공정위에 가서 물어보자"는 말이 나올정도로 대중적
명망이 있었다.

그러나 한 간부의 독직사건은 공정거래위의 공신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공정위의 한 직원은 "공정위만은 믿었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질책하는
시민전화가 폭주했었다"며 공정거래위 15년 역사상 최대위기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정의 실현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과거 어느때
보다 컸는데, 최근의 현실을 보면 별로 개선되지 않았음이 각종 통계자료는
보여주고 있다.

90년대이후 경쟁과 자율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면서 그에 따른 불공정과
독과점현상이 증폭된게 오늘의 현실이다.

대기업그룹들은 오히려 더 다양한 업종 다각화와 대형 신규사업 투자,
그리고 소유집중을 실현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공정거래위의 소극적이고 불공정한 운영에도 그 책임의
일부가 없지 않았다.

공정거래위는 이제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재점검하고 위상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비단 고위간부의 수뢰사건이 터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의 경제발전단계나 산업환경에 비추어 과거 어느때보다 독과점과
공정거래의 문제가 중요한 당면과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과점정책의 재정비는 우선 제도와 법제의 보완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헌법으로서의 공정거래법이 지금까지 너무 신중하고 안이하게 운영
된데는 처음부터 독과점의 원인규제보다는 그 결과로서의 폐해에 대해서만
규제하려는 소극적 자세와 연관이 있다.

또한 제도개선 못지않게 조직의 혁신과 전문화 그리고 보다 엄정하고
공정한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내적정비도 필요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의 위상은 단순히 직급만 높아졌다고 얻어지지는 않는다.

이런점에서 공정위가 지난 16일 연찬회라는 이름으로 "자아비판"의 기회를
갖고, 업무집행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한 것은 늦었으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보고 싶다.

공정위는 또 18일에는"그간 정책담당자 위주로 운영해온 공정거래제도를
민원인등 고객중심으로 전환하며 이번일을 계기로 더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앞으로의 행보를 예의 지켜고자 한다.

전영도 <광주시 서구 농성동>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