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용 < 연세대교수/경영학 >

두 전직대통령의 뇌물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가신인
청와대 청지기가 뇌물을 받은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들은 무식하거나 유치한 방법으로 뇌물을 챙기다 크게 들통이 났다.

그러나 유식하고 세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직무상 취득한 내부정보나
뇌물성으로 제공받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축재를 한다.

사실 출처가 석연치않은 공직자의 재산증가는 미공개된 내부정보를
이용한 단기간의 증권투자가 그 원천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그룹의 총수는 그룹의 토지개발 내부정보를 총애하는 임원에게
"하사"한다는 유명한 얘기도 있다.

최근처럼 주가의 급등락을 유발하는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
이와 관련된 내부정보를 뇌물로 "상납"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돈처럼 가치가 나가지만 돈 그 자체는 아니므로 금융실명제를 피할수 있고
내부자거래의 규제가 허술하니 적발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좋은 방법이다.

전문가(professional) 집단의 끊임없는 비리와 허술한 법제도를 보면서
"금융시장에서의 내부자거래 비리"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떨쳐 버릴수없다.

단순히 현행 증권거래법에서 규정하는 지극히 제한적인 의미의 내부자
거래만이 아니다.

전문가가 직무상 획득한 미공개 정보를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투기성
자산시장에서의 거래에 활용해서는 않된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경쟁의 룰"의 하나이다.

그런데 금년 5월3일에 시작되는 주가지수선물을 포함하는 주식 금리 외환
등의 파생금융상품은 여러가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이유에서 새로운
양상의 심각한 내부자거래의 문제를 야기할수 있으므로 시급히 대책이 마련
되어야 한다.

첫째, 파생금융상품은 내부자거래의 유혹이 근본적으로 강한 상품이다.

파생금융상품은 기본적으로 신용거래의 성격을 띠고있어 매우 적은
현금만으로도 커다란 수익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1억원 상당의 주식투자효과를 가정해 보자.

주식에 직접 투자하려면 60%를 신용으로 매입한다 하더라도 자기자금이
4,000만원이나 필요하다.

그러나 주가지수선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약1,500만원, 주가지수옵션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약200~300만원의 자기자금만 있으면 된다.

자산의 가격과 투입한 자기자금의 비율을 나타내는 이른바 레버리지가
주식은 2.5배에 불과하지만 주가지수선물은 약 7배, 주가지수옵션은
30~50배나 된다.

둘째, 파생금융상품의 등장으로 거시경제변수에 대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획득하는 것이 매우 수월해진다.

예컨데, 주식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정부정책이나 금리, 통화량,
무역수지등의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축재를 하려면 과거에는 번거로움과
많은 거래비용을 부담하면서 다수 종목의 주식을 매매하여야 하였지만,
이제는 간편하고 거래비용이 저렴한 주가지수선물이나 옵션 한 종목만
매매하려면 된다.

과거에는 개별기업의 주식이니 특정지역의 부동산등 개별자산에 관련된
내부자거래만이 사실상 가능하였으나 이제는 주식시장, 채권시장, 외환시장
등 시장전체에 관련된 내부자거래도 가능하여지게 되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이렇듯 적은 현금만으로도 대규모 투자효과를 가져올수 있고,
저렴한 거래비용만을 부담하면서 시장 전체의 변동에 베팅(betting) 할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기 때문에 투기거래와 내부자거래를 동시에 유발한다.

그렇다고 해도 공정한 규칙에 따르면서 위험을 부담하는 투기거래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비밀만 지켜지면 위험부담이 없는 내부자거래는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치는 역기능적 측면만 있다.

그런데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정보를 직접 생산하는 고위관료와 국회의원,
금융통화위원회와 중앙은행의 간부, 그리고 경제정책수립에 자문하는 교수,
공인회계사, 변호사등의 전문가 그룹, 아울러 보도를 위해 내부정보를 제공
받는 언론인등 장외의 내부자가 미공개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주가지수선물
등의 파생상품시장에서 내부자거래를 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현행 증권거래법이나 선물거래법 어디에도 없다.

내부자거래를 규제하는 법규는 입법기술상 만들기도 어렵고 집행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파생상품의 내부자거래는 규제접규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형성
하고, 법규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전문가 집단이 대부분 잠재적인
규제대상의 범주에 속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파생상품의 내부자거래 가능성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영.미에서 가장 발달된 내부자거래의 규제제도를 참고로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적합한 규제법규를 시급히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