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망이 경제메카니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고있다.

기업들의 광고가 통신망에 적극 진출하고 홈쇼핑도 급증한데다 통신인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기도하면서 생산 소비 유통이 한데 어울어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가장 두드러진 곳이 출판분야.

지난 92년 "나는 컴퓨터시인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시집이 출판된 이후
PC통신망에 올라온 글들이 책으로 출판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출판이 가능해진 시대가 열린 것이다.

94년에 출판돼 지금까지 2백만부이상이 팔려나간 이우혁씨의 "퇴마록"은
PC통신을 통해 출간된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이 책을 내놓은 들녘출판사 유연식편집주간은 "통신인들이 올린 글을
자주 검토하다가 많이 읽히는 것을 보고 상품성을 높이샀다"며 "통신
게재물들이 선정적이거나 호기심유발에 지나치게 치우친 경우가 많지만
누구나 글을 쓰고 평가받을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문단의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소비자가 생산주체로 나서고 있는 변화의 한 모습이다.

기성작가들도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창작중인 글을 연재, 자신의 작품을
검증받기도 한다.

작품창조과정에서 독자와 미리 교감하고 창작의 동력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이같은 일이 가능해 진 것은 일방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서로 의사교환이
가능하고 (쌍방향성) 누구나 손쉽게 정보에 접할수 있는 (대중성) PC통신의
독특한 성격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주목한 것은 비단 출판업계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늘어나는 PC통신인구를 잠재적 소비자로 파악해 광고와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사와 타사제품에 대한 인지도"조사는 기본이고 통신망에 올라오는
글들중에서 반짝이는 기획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대우전자는 최근 천리안 기업광고란에 "탱크주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폭넓은 소비자의견을 받아들여 마케팅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도다.

LG전자도 자사제품인 휴대폰 "화통"에 대한 고객평가단을 통신망을 통해
모집, 운영중이다.

기업들이 마케팅에서 무엇보다도 관심을 기울이는 부문은 자신들이
타킷으로 삼고있는 소비자들의 "심리상태".

특히 PC통신인구의 70%가 유행에 민감한 20~30대인 만큼 사이버스페이스
(통신망을 이용한 가상공간)의 갖가지 현상은 상품기획단계에서 반드시
파악해야할 분야가 됐다.

"PC통신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탐구하지 않고서는 소비대중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시대다"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뱉는 말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광고공간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광고게재료가 월5백만원수준으로 방송등 여타매체에 비해 싼데다 통신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라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천리안 하이텔등 PC통신망에 게재되는 기업들의 정기광고란은
2백여개가 넘는다.

삼성전자 등 유명 대기업에서부터 잘 알려지지않은 중소기업들까지도
소비자를 만나는데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천리안 마케팅과에 근무하는 황보순씨는 "통신인구가 늘면서 앞으로
기업들의 주된 광고무대도 신문 TV등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할 것"
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지난해 20억원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던 통신광고
시장이 올해는 두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통분야도 PC통신망을 이용한 홈쇼핑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아직까지는 꽃배달 도서구입같은 초기적인 홈쇼핑에 그치고 있지만
전문적인 업체도 속속 통신망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하이텔을 통한 홈쇼핑매출은 2만여건에 8억원규모.

신용카드회사와 롯데백화점 등 대형유통업체도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판매에 앞장서고 있어 PC통신을 이용한 홈쇼핑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중간유통업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우려도 이래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세력도 갖가지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참여주체 누구나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할수 있는 "열린 공간"인만큼 어느
일방의 독주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대중을 공략하려는 기업들과 권익보호에 나서는 소비자들간의 주도권
경쟁이 이젠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