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중리스".

지방리스사에 떠도는 말이다.

그동안 중복리스라는 용어는 있었어도 8번이나 중복으로 리스를
해주었다는 말은 요즘 새로 나온 조어이다.

8중리스의 내막은 이렇다.

지방의 중소기업이 폐업하기로 마음먹고 신문에 공장매각광고를 낸다.

그러면 전문브로커가 사장에게 찾아가 "리스회사에서 자금을 빼줄테니
공장을 매각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그리고나서 그 공장에 전혀 필요없는 기계를 하나 들여놓고는 A라는
리스회사에서 자금을 대주도록 알선한다.

그리고 얼마후 신문에 다른 공장매각광고가 나면 그 브로커는 똑같은
수법으로 매각희망공장사장에게 찾아가서 리스자금알선을 권유한다.

그리고 첫번째 공장에 설치했던 기계를 떼어다가 설치하고 B라는
리스회사에서 자금을 알선해준다.

이런 식으로 기계하나로 8번이나 중복리스를 한다.

물론 지방리스사의 실무직원들이 공범으로 끼여든다.

임원들도 잘 모른다.

리스회사로서는 담보로 확보한 기계는 엉뚱한데 가 있어 담보를
회수하려고해도 담보가치는 8분의 1에 불과하다.

재정경제원이 최근 발표한 지방리스사에 대한 첫 감사결과도 이같은
업계실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0개 지방리스사가 예외없이 불법리스를 자행한 사실이 적발됐다.

유형도 다양하다.

리스를 하지 않고도 했다고 기록하는 공리스를 비롯해 폐업체지원
금지업종리스 리스대금유용등 12가지 유형이다.

리스사가 이같은 불법을 일삼는다고 리스사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할수도
없는 형편이다.

첫째는 리스사가 너무 많다.

6공시절 서울의 5개리스사외에 지방에 20개리스사를 무더기로 인가해
주었다.

여기에다 15개 종금사에도 리스업무가 허용돼있고 한국종합기술금융
한국기술금융 한국개발투자등 3개사도 가능하다.

렌털회사도 사실상 리스업무를 하고 있다.

여기다 오는 7월부터는 금융산업개편에 따라 15개 투금사도 종금사로
전환해 리스업무가 가능해진다.

이럴 경우 리스업무를 하는 회사는 금융기관만 무려 58개에 이르게
된다.

또 현재 할부금융회사도 리스사의 잠재적 경쟁상대다.

리스는 기계설비등 시설재구입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고 할부금융은
자동차 주택 등 내구재에 돈을 대주는 차이가 있지만 선진국은 이런
구분이 없다.

앞으로 리스사에 개인리스가 허용되면 31개 할부금융사도 경쟁상대로
떠오른다.

리스사의 영업환경이 어려운 두번째 이유는 리스사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다양한 업무가 허용된 종금사나 할부금융사등 경쟁자와는 달리
전업리스사는 오직 시설대여업무만 전업으로 하고 있다.

업무내용에서 외국처럼 소비자가 구입하는 소비재에 대한 리스가
불가능하다.

현재 소비재리스는 할부금융사만이 가능하다.

리스사는 자금조달도 종금사에 비해 불리하다.

종금사는 해외에서 저리의 외화을 빌려와 국내에 운영하고 있으나
리스사는 국내금융기관이나 종금사등에서 자금을 빌려 이를 재원으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리스사들은 자금조달비용면에서 훨씬 큰 부담을 안아야한다.

외화조달은 1년이상 중장기만 허용되고 있다.

리스사는 증자도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리스사는 주주가 대부분 지방상공인이나 은행이라 주주들이 증자에
소극적이다.

최근 재정경제원이 이같은 리스사들의 형편을 감안해 팩토링업무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정도로는 숨통이 트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리스협회가 최근 작성한 "리스산업개편방안"은 이런 위기를 탈출할
대안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 중고물품에 리스를 해주는 이른바 "Sale & Lease
back" 과 산업용부동산에 대해서도 리스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의무비율과 리스대상물건, 이용자, 업종제한을 풀어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금융기관이 취급하고 있는 업무도 겸업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예컨대 운전자금대출 할부금융업무 리스관련카드업무허용 벤처캐피털등도
할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리스업계가 이처럼 업무영역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리스 할부금융 카드등이 여신전문금융기관 (Non-Bank Bank) 으로
통합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신전문금융기관으로의 통합이 대세라면 금융산업개편도 조기에
이런 쪽으로 방향타를 잡자는 얘기인 셈이다.

리스산업은 94년말 현재 연간 리스실행실적이 132억달러로 세계5위다.

아직 공식통계는 안나왔지만 95년 신장률을 감안할 경우 리스실적은
4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는게 리스협회의 애기다.

리스산업은 그동안 산업자금을 집중공급해 한국경제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경제운영이 성장.개발중심에서 안정.복지중심으로
전환한 마당에 리스사에 아직도 80년대식 개발금융만을 전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고루한 의식에
불과하다는게 리스업계의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