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사업참여를 추진중인 한전이 어떤 컨소시엄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현재까지 2파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국제전화 컨소시엄중 한전이
어떤 한 편에 설 경우 "특혜시비"가 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왜냐하면 전국적인 광통신망을 갖고 있는 한전이 어느 컨소시엄에
참여하느냐는 사업권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컨소시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최종
사업권을 따낸 컨소시엄에 들어가자니 "후발 참여자"로서의 불이익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한전 입장에선 광통신망 보유라는 "최대 메리트"가 아이러니컬 하게도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이 돼버린 꼴이다.

한전이 현재까지 국제전화사업 참여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당초 지난달 28일 긴급이사회를 통해 회선임대와 국제전화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안건으로 올리려 했다.

그러나 이날 한전은 회선임대사업 참여만 승인을 받았을뿐 국제전화사업
참여안은 상정조차 못했다.

재정경제원 등 정부의 반대때문이었다.

정부의 반대논리는 이랬다.

한전의 참여 컨소시엄 결정은 곧 국제전화 사업자 내정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것.

한전은 전국에 7천7백Km의 광통신망을 깔아놓았다.

국내 74개 시중 70개 시를 커버하는 규모다.

이때문에 한전은 애초부터 국제전화사업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평가됐다.

국제전화 사업을 희망하고 있는 롯데 고합 일진 한라등 8개 기업들이
모두 한전을 잡으려고 혈안이 됐던 것도 이 때문.

따라서 공기업인 한전이 2대 컨소시엄으로 나뉘어진 국제전화
경쟁그룹중 어는 한 곳을 선택한다면 "정부의 사전 내정이 아니냐"는
시비를 낳을게 뻔하다.

총선을 코앞에 둔 정부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전은 그래서 경쟁 초기단계부터 참여 희망기업들이 모두 참여하는
"그랜드 컨소시엄"이 구성되길 희망했다.

지금도 한전에 손짓하는 기업들과 개별접촉을 가지면서도 "업계
대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고합.해태.대륭.아세아와 일진.한라 등으로 나뉘어진
2개 컨소시엄이 하나로 뭉쳐 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업체 수가 많을 수록 그만큼 각자의 몫이 적어지는
탓이다.

한전의 "희망"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전은 차선의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두개 컨소시엄이 경쟁해 최종 사업자가 선정되면 나중에 참여한다는
복안이다.

한전관계자는 "어차피 공기업인 한전이 주도사업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컨소시엄과 손을 잡아 정부에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며 "사업자가 결정된 후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업자 선정 직후 바로 참여하기는
힘들다.

정보통신부는 "사업자 선정때의 컨소시엄 지분율은 서비스 개시때까지
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한전은 신규사업자가 국제전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참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땐 이미 참여 사업자들이 경영권등에서 각자의 몫을 챙긴 다음이다.

한전으로선 뒤늦게 참여하는 만큼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한전은 물론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막판에 두개의 컨소시엄이 대통합을 이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도 그렇기 때문이다.

업계 대통합의 고비는 이번주말까지로 보고 있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한전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는 상황이다.

국제전화 사업권의 향방에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치부됐던
한전이 공기업이란 한계때문에 민간기업들의 경쟁에서 "종속변수"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