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나웅배 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이 은행들의 무리한 외형경쟁 지양및
금리인하를 촉구한 뒤 많은 은행들이 우대금리 또는 신탁대출 금리를 조금씩
내리기로 했다.

아울러 재경원은 빠르면 다을달 초부터 지급 준비율을 평균 1.5%포인트
낮춰 금리인하를 적극 유도할 예정이다.

정부가 금리인하를 유도하는 명분은 뚜렷하다.

국내 금리수준이 선진국은 물론 주요 경쟁국인 대만이나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훨씬 높아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대출금리가 내리지 않으면 최근 범 정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의의도 반감되고 만다.

예금보험제도의 시행및 제2 금융권과의 불균형 시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예를 봐도 지급준비율이 지금처럼 높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은
든다.

지준율이 낮아지면 자금수급및 은행수지가 개선되고 금리를 낮출 여력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금리인하 유도는 여러가지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책추진
형식이 좋지 않음은 물론 효과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본다.

우선 금리자유화를 예정보다 앞당겨 3단계까지 완료했다고 자랑하며 틈만
나면 금융자율화의 당위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이유야 어떻든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데도 하필이면 총선을
앞두고 금리낮추기에 나선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좋지 않다.

더욱이 금리인하가 시장자율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데다 현행
통화관리체계를 그대로 둔채 지준율을 낮춘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점이 더큰 문제다.

은행들이 실속없이 외형경쟁에만 열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에
틀림없다.

수신 경쟁으로 수신금리가 오르면 연쇄적으로 대출금리까지 오르는
부작용도 염려된다.

가계대출 금리나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을 받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가 더 높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은행체질 개선에는 시간이 걸리며 여건조성이 필요하다.

못마땅하다고 걸핏하면 정부가 나서면 금융자율화는 입에 발린 소리가
된다.

재정이 할일을 금융에 떠맡기면 꺾기와 같은 변칙이나 금리왜곡이 심해지게
되며 지배주주의 출현을 막다보니 관료주의가 판치게 마련이다.

또한 지준율 인하로 인한 통화팽창을 막기 위해 통화안정증권 발행을
늘리면 실제 금융시장의 자금수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재할인금리와 규모가 정책금융 때문에 신축적이지 못하며 지준율조정도
총액대출 한도와 연계돼 있어 별로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자금지원은 재정부담 및 장외시장활성화 등에 맡겨
재할인율과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지준과 총액대출 한도를 예대상계해
지준율을 크게 낮출 필요가 있다.

금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고 통화관리체제를 개선하는 일은 서둘러야
된다.

하지만 아무런 사전준비와 기반조성도 없이 전시효과만 노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