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은 타란티노 신드롬의
출발점이자 그의 "천재적 광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무모할 정도로 뒤집힌 플롯과 엉뚱한 결말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타란티노만이 갖는 파격적 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

잔혹성과 폭려과다로 92년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던 작품.

그만큼 실험성이 강하고 돋창적이다.

자작시나리오와 15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가난한
비디오가게 점원이던 그를 "고다르 이후 최고의 데뷔작가"로 부상시켰다.

이야기는 표면상 2곳의 무대로 나뉘어 전개된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6명의 갱스터.

똑같이 검은 양복차림을 하고 식당에 모여앉은 이들은 마돈나의 노래를
소재로 상스러운 농담을 주고 받고 팁을 주느냐 마느냐로 논쟁을 벌인다.

보석강도를 위한 모임.

코드명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극히 한가로워 보이는 이 장면이 지나자마자 스크린은 곧바로
숨막히는 유혈극으로 흥건해진다.

계획이 유출돼 브라운 (켄틴 타란티노)과 블루 (에디 벙커)가 숨지고
오렌지 (팀 로쓰)는 복부에 중상을 입은채 빈 창고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영화는 밀고자를 찾는 탐색전과 맹목적인 의리, 폭력에의
사슬로 이어지며 사건의 전후와 인물에 대한 성격을 하나 둘 드러낸다.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를 눕혀놓고 배반자를 찾으려는 실강이가 처연한
유머로 얼룩진다.

서로를 의심하다 결국 연쇄적인 총격으로 자멸하고 마는 마지막 장면은
타란티노가 아니면 연출하기 힘든 대목.

자신이 비밀경찰임을 밝힌 오렌지를 끌어안고 비통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트 (하비 케이틀)의 최후순간도 가슴 시린 여운을 남긴다.

감독이 직접 선곡한 70년대 록뮤직의 입체효과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한층 강화시킨 요소.

빛으로 상징되는 식당과 어둠속에 갇힌 창고의 공간대비도 절묘하다.

( 피카디리 씨티 브로드웨이 이화예술 상영중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