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으로 질주하던 미컴퓨터회사들이 뜻밖의 돌부리에 걸렸다.

중국의 PC시장을 황금어장으로 여기고 이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던 미국의
컴퓨터회사들이 사소한 문제 하나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는 바로 키보드의 자판.

지금까지 중국에서 PC사용자들은 주로 외국어구사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서
영문키보드가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일반대중에게도 PC를
보급하려면 키보드까지 중국화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중국 대중언어인 백화문자를 PC키보드에 담으려면 무려 5,000개의 자판이
필요하다.

물론 자판을 늘리지 않고도 백화를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 글자를 만들기 위해 6번이상 두들기면 된다.

PC초보자들은 자판을 익히는데만 4권이상의 메뉴얼북을 읽어야 한다.

자판을 다 익히더라도 PC사용속도가 엄청나게 느릴 수 밖에 없다.

이 문제 때문에 IBM 애플 모토로라 등 최근 중국판 PC생산을 선언한
미컴퓨터회사들은 아예 키보드 입력방식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음성입력장치나 전자펜입력시스템을 실용화해 볼 작정이다.

그런데 이 해결방법도 간단치 않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애플은 35만정도의 중국상용문자를 읽어낼 수 있는 음성입력장치를 개발
했다고 지난 2월초에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격 시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애플은 중국시장에서 PC적정판매가격을 1,000달러로 보고 있다.

일반매장에는 1,200달러이상의 기종을 내놓지 않겠다는게 이 회사의 영업
방침이다.

그러나 키보드를 음성입력장치로 바꿀 경우 3백달러정도의 가격상승요인이
발생한다.

또 하드디스크의 메모리를 확장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여기에다 명령을 수행하는데 5%정도의 오차가 발생해 긴 작업을 할 때는
사용자를 짜증스럽게 만든다.

짜증요인은 또 있다.

컴퓨터가 음성명령을 수행하는데 말하는 속도 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1분에 처리할 수 있는 단어수는 최고 60개이다.

모토로라는 "렉시쿠스"라는 이름의 전자펜을 키보드 대체용으로 내놓았다.

모토로라의 이 전자펜입력장치는 대당 가격이 100달러선으로 음성입력장치
보다 싸고 속도도 빠른 장점이 있으나 아직 정확도가 뒤떨어지는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현재 정확도는 90%정도.

모토로라는 그러나 이 전자펜을 사용할 때는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필요없고
설치도 간편해 정확도만 높이면 키보드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대량생산체제를 갖춰 대당 제조원가를 20달러선까지 내린다는 목표
도 세워두고 있다.

다만 이런 목표가 달성될 시점에는 대만이나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컴퓨터업체들도 강력한 경쟁무기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게 모토로라의
걱정거리다.

IBM도 본사 중앙연구소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음성입력장치를 개발중이다.

IBM은 이 장치가 말하는 속도만큼 빨리 인식할 수 있을 때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미컴퓨터업체들은 중국의 PC시장이 매우 난감한 숙제를 안겨주고 있으나
컴퓨터입력장치의 혁신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시장에서 판매경쟁은 키보드를 대신할 수 있는
입력장치를 누가 싼가격으로 빨리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고 장담한다.

중국은 대부분의 소비재과 마찬가지로 PC수요의 증가율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장이다.

지난해 PC수입액은 28억달러로 전년대비 40% 늘어났고 올해 수입증가율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전산화작업이 올해부터 본격화되는데다 일반가정의 PC구입도
확산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최대 공업도시인 상해의 PC보급률이 전체가구의 5%에도 못미친다
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PC시장은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이에비해 자국시장의 수요신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는 미컴퓨터업체들은
중국에서 지금 맞닥뜨린 조그만 돌부리에 결코 좌절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