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노령화하는 사회에서 어린이 장난감만을 만들어 기업을 살찌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의 대표적인 장난감 메이커 반다이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변신을
꾀하고 있다.

목표는 멀티미디어업체가 되는 것이다.

"파워레인저"라는 캐릭터로 널리 알려진 이 회사는 장난감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높은 지명도를 살려 어린이는 물론 어른까지 공략하는 업체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반다이는 최근 "피핀 아트마크"라는 첫번째 야심작을 내놓았다.

이는 개인용컴퓨터(PC)와 게임기의 기능을 결합한 멀티미디어기기로 일종의
고급 장난감이다.

이용자는 컨트롤러를 움직여 게임을 즐길수 있고 PC통신도 할 수 있다.

별도로 키보드를 사서 붙이면 PC와 그다지 다를게 없다.

"피핀"은 반다이가 일본 컴퓨터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미국 애플
컴퓨터와 공동개발한 제품으로 한마디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단순화한
것이다.

운영체계(OS)로 애플의 "매킨토시"를 채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피핀"을 판매하는 일은 반다이 계열사인 반다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BDE)가 맡기로 했다.

BDE는 종래 완구를 팔던 때와는 달리 통신판매를 원칙으로 세웠다.

올해 판매목표는 국내 30만대, 해외 20만대.

반다이는 지난 2월말 320여개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맥월드 엑스포
도쿄"에 "피핀"을 출시, 예비고객들의 반응을 점검했다.

반다이의 산과성 사장은 "피핀"에 대해 "게임과 통신이 모두 가능하고
어른들도 가지고 놀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라고 자랑하면서 "어린이만
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 게임기와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6만5,000엔(48만원)에 달하는 가격.

멀티미디어기기로 보면 비싼 편이 아니지만 고급 장난감으로 사기엔 결코
무시할수 없는 금액이다.

과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PC 대신 "피핀"을 사주겠느냐는 얘기다.

물론 PC로 치면 싼 값이다.

하지만 최근 히타치제작소를 비롯한 컴퓨터업체들이 이른바 "500달러
(39만원) PC"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어 "피핀"의 장점으로 싼값을 내세우는
것은 무리다.

반다이는 자사와 애플컴퓨터의 높은 지명도가 큰 힘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다행히 애플이 경영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지금도 일본에서는 무지개 빛깔의
로고가 붙은 "매킨토시" 컴퓨터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반다이는 미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스로부터 인터넷 브라우저(접속
소프트웨어) "자바"를 도입키로 하고 지난 2월말 기술계약을 체결했다.

"피핀"을 인터넷과 접속되는 멀티미디어기기로 격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금년 여름에는 "핫 자바" 브라우저를 "피핀"에 도입할 예정이다.

장난감 메이커로서 굳어진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하는 반다이가 멀티미디어
분야만을 공략하는 것은 아니다.

반다이는 어린이 고객들을 좀더 광범위하게 공략하기 위해 인접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의류 일용잡화 과자 등은 멀티미디어 이외에 반다이가 추진하는 신규사업
분야들이다.

반다이는 95년 3월 끝난 회계연도에 이 분야에서 500억엔의 매출을
올렸으며 2000년까지 매출을 1,000억엔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다이는 멀티미디어사업에 진출하는 올해를 "승부의 해"로 정했다.

4년후인 2000년에는 멀티미디어부문에서만 1,000억엔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이 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첫 관문이 "피핀"이다.

장난감 메이커가 내놓을 이 제품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