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말 멕시코 티후아나 공단내 삼성전자 2층의 소회의실.

현지 간부들간에 긴급 전략회의가 열렸다.

미국 상무부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한국산 컬러TV에도 "우회덤핑혐의가
있다"며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는 전문이 날라온 것.

박경팔 총괄 본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미국의 이같은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무엇보다 심리적 위축이 크다.

다각도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뭇 심각하게 시작된 이날 회의는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났다.

미국측이 덤핑조사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실제 수출에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삼성이 티후아나를 처음부터 "복합단지"로 설계한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을 뚫는 핵심전략중 하나가 바로 이같은
"복합화"다.

복합 가전단지에선 컬러TV의 핵심 소재인 유리벌브와 브라운관 튜너
고압변성기 등이 일괄 생산된다.

물류비용이나 관세부담 등을 줄일수 있는 것은 물론 현지부품조달
(local contents)비율도 충족시킬 수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원산지 규정을 피하되 소재 부품 조립
등 3단계에서 각각 가격및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단순히 TV를 조립하는 체제로만은 NAFTA의 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13인치 컬러TV정도다.

이 제품의 브라운관은 현지에서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머지 제품은 모두 현지부품조달비율을 45%로 정한 NAFTA의
원산지규정을 충족시키고 있다"(최문경 삼성전자 멕시코 생산법인장)는
자신감도 "복합화"의 산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대우전자의 산루이스 종합영상단지도 이같은 "무역장벽 뛰어넘기"를
겨냥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컬러TV의 핵심부품인 편향코일 고압변성기 등을 일관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점에서다.

내년에는 계열사인 오리온전기를 통해 브라운관도 생산한다.

삼성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생산품목을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

대우는 지난해까지 멕시코 북부의 산루이스에서 컬러TV만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VTR와 모니터도 추가했다.

멕시코 시티에 인접한 케레타로지역에선 냉장고(연산 10만대)와
세탁기(연산 15만대)공장도 가동중이다.

내년엔 전자레인지 공장도 입주시켜 멕시코에서만 5대 가전제품을
모두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멕시코내에서 삼성전자가 전문점이라면 대우전자는 백화점"(박준성
대우전자 멕시칼리법인장.이사)인 셈이다.

LG전자가 추진하는 현지 일관생산체제의 축은 국내 중소기업과의
"동반진출".

부품부터 셋트까지 모두 현지에서 제조하겠다는 뜻이다.

"불필요한 무역마찰의 요소를 없애는 동시에 원가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이덕주 LG전자 중남미지역담당.이사)는 전략으로 볼 수있다.

동반진출은 우선 수직계열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부품현지화율을 높이고 관세와 물류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미 대양전자(포장재) 샤인전자(PCB조립생산) 성문정밀(코일)
금성플래스틱(사출물) 등이 멕시칼리 공장 인근 전용공단내에 입주해 있다.

또 올 상반기까지는 파워코드 리모컨 등 TV관련 부품업체들이 추가로
들어온다.

임길포 LG전자 멕시코법인장은 "현재 50%인 컬러TV의 현지부품조달비율이
올해말에는 80%로 올라간다"며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생산전략의 핵심과제인 세계 어디서나 "동일품질 동일코스트"를
실현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복합화" "다각화" "동반진출" 등 멕시코에 진출한 가전사들의 전략은
여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지향하는 점은 한가지다.

멕시코 생산거점을 "최전선"으로 NAFTA의 무역장벽을 뚫는 것.

"통상마찰이 글로벌화를 촉진시킨다"는 역설은 이곳 중남미 최전선에선
실제 상황인 셈이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도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은 뜨겁기만 하다.

[티후아나(멕시코)=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