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천호동 원일수퍼마켓 주인 장영수씨는 요즘 유통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POS(판매시점관리)시스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하루매상이 1백만원도 안되는 수퍼마켓에서 7백만원이나 하는 POS시스템을
도입한다는게 부담스러운데다 컴퓨터라는 낯선 기계를 사용하는게
두렵기도 했다.

정부에서 내놓은 POS지원 혜택을 받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알고보니
만만치 않았다.

10여가지 이상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다 수속과정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위해 해당은행에 담보를 제공하는 것도 싫었다.

장씨는 결국 "25평정도의 매장에서 물건이 들고 나는 것이 뻔하지
않겠느냐"고 자위하면서 "POS가 있어봐야 큰도움이 되지 않을 것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초구 방배동 동서슈퍼마켓 주인 김기훈씨는 큰 돈을 들여 설치한
POS설비를 지난달 철수했다.

1년전 7백만원을 투자해 들여놓은 POS시스템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POS시스템을 설치한 후 영업효율이 오르기는 커녕 작업량만
늘어나게 됐다"고 털어놨다.

상품이 들어올 때마다 입력시키고 매일밤 판매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이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고가 줄어들거나 매출이 늘어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익숙치 못한 프로그램에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김씨는 결국 매일 매출액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POS를 활용했다.

업무효율을 높이는데 별로 도움이 안되면서 일만 늘어나게 만든
POS를 없앤것은 그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씨와 김씨의 얘기는 어찌보면 우리나라 중소영세상들의 현실이다.

"소매상정보화"의 대명사인 POS를 도입하기에는 구모가 너무 영세하다
(장씨).

매장규모가 어느정도 이상되어 POS를 도입했다 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줄
모른다(김씨).

국내소매업들의 POS도입이 미미한 것은 경영이 그만큼 주먹구구식으로
돼왔기 때문이다.

POS는 어떤제품을 언제 얼마나 판매했는지를 자동판독하는
전산시스템이다.

단품관리 재고관리를 철저히 하고 매장효율을 높이는게 바로 POS다.

월간 마켓저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영소매업자 1백20명중 47.5%가
POS설치 이후에도 매출의 변화가 없었다.

"재고가 줄지 않았다"는 응답도 55%에 달했다.

POS를 경영효율을 높이는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수퍼체인이나 편의점,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는
모든 상품주문과 재고관리가 POS시스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업체는 팔리는 양만큼 즉시 컴퓨터로 주문하고 단품기준으로
매장을 관리하고 있다.

그만큼 인건비와 재고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주먹구구식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소영세상이 대형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POS를 제대로 활용해 경영효율을 높이려는 소매상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80여개 자영수퍼마켓으로 이루어진 서울 동남부수퍼마켓조합의 경우
조합 직영점에 새로운 POS시스템을 직접 설계해 설치했다.

이 조합의 김경배이사장은 "1백30평 규모의 양재동 직영매장에 POS를
설치하고 이를 조합본사와 물류창고 컴퓨터와 연결했다"며 "매장에서
입력된 자료를 본부에서 접수하면 이를 곧바로 배송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은 다른 조합원에게도 POS설치를 권유, 전 조합점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중소자영소매업자들중 POS를 도입한 곳이 1%에 불과하다"는 중소기업청
민병군 종합소매업과장의 얘기가 바로 그 반증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