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달러짜리 만년필과 50센트짜리 볼펜중 어느게 더 잘 팔릴까.

거짓말 같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불몽블랑브랜드 "888 프린스 리젠트"펜
(시가 5천9백달러)이 5개지점 모두 없어서 못팔 지경이다.

더구나 아직 진열대에 오르지도 않은 불샤넬브랜드 더블 트위드드레스
(2천9백99달러)는 예약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지난 80년대 미대륙에 몰아친 과소비열풍이 이처럼 다시금 고개를 쳐든
것에 대해 아리에 코플만 샤넬회장은 "최근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시욕을 충족시켜줄만한 상품에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샤넬은 이같은 소비심리를 꿰뚫는 고가상품공세로 지난해 미국에서의 매출
을 20%이상 끌어올렸다.

산업회보 "탁티컬 리테일 모니터"에 따르면 영하미스 스카프(2백달러)나
샤넬의 정장용 핸드백(1천7백45달러)등과 같은 디자이너아이템의 지난해
매출규모는 3백억달러로 한해전보다 18% 팽창했다.

반면 타올 티셔츠등을 모두 포함한 일반 생활용품은 5천7백50억달러규모로
4.5%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우기 월마트 K마트등 중저가 유통체인업체들은 판매부진에 따른
궁여지책으로 마진폭을 바닥선으로까지 낮추고 있으며 칼도르나 제임스웨이
같은 대량판매업체는 아예 파산지경에 몰려 있다.

발레리에 스틸레 뉴욕 패션 인스티튜트대학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지난
90년대초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92년이후 계속돼온 탄탄한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되살아나고 있는 증거"라고 분석한다.

한편 "탁티컬 리테일 모니터"의 발행인 이삭 라그나도는 "몸치장을 화려
하게 함으로써 자신감이 없거나 금전사정이 안좋은 것을 감추려는 사람들
에게서 과소비가 비롯되기 쉽다"고 반박한다.

어쨌든 이같은 고가브랜드 문전성시에 찬물를 끼얹을 만한 사태는 당분간
없을 듯하다.

8백25달러짜리 가방이나 2천2백60달러짜리 가죽재킷이 날개돋힌듯 팔리고
있는 뉴욕 트럼프타워에서는 한사람이 살수 있는 아이템수가 제한될 날도
머지않을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