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림 < KOTRA 방콕무역관장 >

문민정부 출현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발전과 변동을 겪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규제중심의 행정개혁과 작은 정부의 실현을 들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간의 불신풍조가 사회 각 부문에
강하게 남아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변혁은 아직 손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금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행정개혁이 제대로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아직 국민 모두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고 그보다는
법령의 강화 또는 외형적인 조직개편 등으로 행정편의 중심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풍조의 해소를 위한 신용사회 정착이 제대로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도 또다른 원인으로 지적할수 있겠다.

오늘날 우리나라 행정을 복잡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첫째가 정보의
횡적 교류 지연, 그리고 매사에 만연되고 있는 불신풍조이다.

공무원은 일반 서민의 약속을 믿을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면책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서류의 보안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정업무의 폭발과 교통량의 증가, 대민접촉의 필요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다.

필자는 이미 70년대 북구 선진국에 각종 정보가 횡적으로 더빨리 교환되고
서로간 신뢰풍토가 확고하기 때문에 업무가 예상을 초월할 정보로 빨리
처리되는 것을 목격한바 있다.

오늘의 불신풍조, 그리고 행정의 복잡성, 교통혼잡을 풀어가는 비결은
다름이 아닌 신용사회의 구축에서 비롯될수 있으며 선진화에 가장 소중한
신용풍토를 조성하는 일은 실물보다 그간 우리가 쌓아온 신용 자산을 실제
일상업무에 적용함으로써 시작된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 신용사회 정착에 즉시 활용할수 있는 자원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그간 실물경제에 대한 과다한 의존습관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신용자산들이 많이 있다.

그중 가장 손쉽게 이용할수 있는 자산으로 공무원과 회사원들이 비축한
퇴직금및 연금, 그리고 신용카드 사용 실적이 열거될수 있다.

퇴직금은 장기 근속자일수록 금액이 크며 은행에 예치돼있는 자금이므로
언제나 현금화가 가능한 돈이다.

우리 각 개인이 급하게 돈을 은행에서 빌려 쓸때 담보물 또는 보증서대신
회사의 퇴직금 예치증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 사회의 담보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각종 행정서류를
간소화할수 있을 뿐아니라 장기 근속자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할수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중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극소수이다.

남에게 신용도를 지킨다는 것은 정직도 평가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만일 A라는 사람이 10년간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정확히 대금지불을
이행했다면 그것을 소중한 신용자산으로 평가할수 있다.

따라서 사용 기간에 따라 그 사람의 신용을 등급화하고 등급에 따라 신용
대출의 한도를 늘려준다면 우리 사회에 많은 신용자산을 생산해 낼수 있다.

이 자산은 향후 우리 행정의 간소화는 물론 최근 문제가 되는 중소기업의
신용대출 기반조성에 전기로 활용될수 있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로 도약하는데 있어 취약요인은 경제규모의 미달 또는
행정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비가시적인 가치, 즉 정직과 신용이 아직까지 담보물로 자산화
되지 못한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작은 정부의 실현은 규제보다는 자율, 그리고 담보보다는 신용, 상하
보다는 횡적인 정보의 공유로 가능하다.

매일매일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의식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심어주고 바르게 사는 동기를
부여하는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때 신용을 등급화하고 과거 실적을 올바르게 평가할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게 필요하다.

이를 근거로 보험과 연계한다면 신용가치의 상품화를 실현시킬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단지 경제분야만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