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중에도 이젠 고급인력이 많습니다.

남성들보다 일에 더 열성적인 경우도 있고요.

이들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기업측의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태평양화학의 유일한 여성임원인 이보섭이사(54)는 여성승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로 기업내 성차별적 인식을 지적했다.

아직도 복사등 단순반복적 업무만이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나 여자상사
가 남자직원을 거느리는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

"여성이 관리직에 오르기 위해 갖춰야할 조건들도 순전히 남성중심적인게
많아요.

남자들처럼 능력만으로 평가받는게 아니란 얘기지요.

예를 들어 능력이 특출하더라도 여성스러움이 없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이사는 그러나 요즘 입사한 여자후배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입사한 자신과 비교하면 그들은
너무나 행복한 세대인 것이다.

"입사시험을 볼 때 제 나이 스물다섯으로 여자치곤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방 결혼하고 퇴직할 걸로 생각했는지 면접관이 "3년내에 퇴직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제가 이렇게 30년도 더 넘게 근무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녀는 사내에서 언제나 "처음"이었다.

결혼한 후에도 회사에 남은 최초의 여직원이었고 첫 여성과장, 첫 여성
부장이었으며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사직에 올랐다.

덕분에 항상 이이사에 맞춰 회사에서는 새로운 승진규정 호봉규정을
만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즐겨 왔다고 말했다.

"요즘 후배들 중엔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기
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후배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이사는 후배여성들이 자신의 위치에 안주해 부서 재배치를 달갑지 않게
여기거나 육아휴직제를 이용하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둬 버리는 것 등을 이해
하기 힘들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해나가면서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녀 승진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성 자신도 소극적이고 현실
안주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