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377) 제9부 대관원에서 꽃피는 연정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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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춘이 보옥의 소매를 잡아 끌어 석류나무 밑으로 갔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보옥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지난 몇달 동안에 엽전을 열 꾸러미 정도 모아두었거든요.
그걸 보옥오빠에게 맡길 테니까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가지고
나가 쓸만한 물건들 좀 사오세요"
"쓸만한 물건들이라니 어떤 것들 말이야?
서화같은 것은 요즈음은 좋은 물건이 눈에 잘 띄지 않더라.
골동품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 말고 전번에 오빠가 사다준 것들 있잖아요.
버들로 엮은 그릇이라든지 대나무 뿌리로 만든 향합, 진흙으로 구워
만든 풍로 같은 것 말이에요.
소박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그런 물건들이 난 좋아요"
"난 또 엽전을 열 꾸러미나 모아두었다길래 비싼 물건을 사오라는 줄
알았네.
향합이니 풍로같은 것들을 사려면 하인들에게 시켜도 되잖아.
그 돈이라면 마차로 가득 싣고 오겠다"
보옥은 탐춘과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대옥에게로 가려고 하였다.
"하인들 중에 물건 보는 눈을 가진 자가 몇 명이나 있어야죠.
오빠가 좀 골라서 사다줘요.
그러면 요전에 해드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비단신을 한 켤레
지어드릴게요"
"알았어. 오늘 저녁에라도 엽전 꾸러미를 내방으로 들고 와"
그러고는 보옥이 황급히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대옥이 어디로
갔는지 또 보이지 않았다.
보옥은 대옥이 자기를 피해 가버린 줄 알고 낙담이 되어 터덜터덜
이홍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봉선화 꽃잎들과 석류꽃잎들이 길가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어 보옥이
걸음걸음 그 꽃잎들을 주워 옷섶에 담으며 소산 쪽으로 나아갔다.
이전에 대옥과 함께 꽃잎들을 모아 묻어두었던 꽃무덤 근방에
이르렀을 때 구슬픈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뜨락에서 슬픈 노래 들리더니 그것은 스러져가는 꽃넋의
흐느낌이던가 나도 겨드랑이에 날개 돋아 저 꽃넋을 따라 가고파라 아,
하늘 끝 어디에 꽃무덤이 있으리 지금은 네가 죽어서 내가 묻어주지만
이 몸 어느날 죽으면 그 누가 묻어줄까 봄이 왔다 가듯이 꽃이 피었다
지듯이 사람도 한번 왔다 가고 말 것을 여기까지 엿듣던 보옥은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보옥의 옷섶에 담겨 있던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꽃넋인 양 바람에
흩날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5일자).
"아니, 왜 이러는 거야?"
보옥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지난 몇달 동안에 엽전을 열 꾸러미 정도 모아두었거든요.
그걸 보옥오빠에게 맡길 테니까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가지고
나가 쓸만한 물건들 좀 사오세요"
"쓸만한 물건들이라니 어떤 것들 말이야?
서화같은 것은 요즈음은 좋은 물건이 눈에 잘 띄지 않더라.
골동품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 말고 전번에 오빠가 사다준 것들 있잖아요.
버들로 엮은 그릇이라든지 대나무 뿌리로 만든 향합, 진흙으로 구워
만든 풍로 같은 것 말이에요.
소박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그런 물건들이 난 좋아요"
"난 또 엽전을 열 꾸러미나 모아두었다길래 비싼 물건을 사오라는 줄
알았네.
향합이니 풍로같은 것들을 사려면 하인들에게 시켜도 되잖아.
그 돈이라면 마차로 가득 싣고 오겠다"
보옥은 탐춘과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대옥에게로 가려고 하였다.
"하인들 중에 물건 보는 눈을 가진 자가 몇 명이나 있어야죠.
오빠가 좀 골라서 사다줘요.
그러면 요전에 해드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비단신을 한 켤레
지어드릴게요"
"알았어. 오늘 저녁에라도 엽전 꾸러미를 내방으로 들고 와"
그러고는 보옥이 황급히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대옥이 어디로
갔는지 또 보이지 않았다.
보옥은 대옥이 자기를 피해 가버린 줄 알고 낙담이 되어 터덜터덜
이홍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봉선화 꽃잎들과 석류꽃잎들이 길가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어 보옥이
걸음걸음 그 꽃잎들을 주워 옷섶에 담으며 소산 쪽으로 나아갔다.
이전에 대옥과 함께 꽃잎들을 모아 묻어두었던 꽃무덤 근방에
이르렀을 때 구슬픈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뜨락에서 슬픈 노래 들리더니 그것은 스러져가는 꽃넋의
흐느낌이던가 나도 겨드랑이에 날개 돋아 저 꽃넋을 따라 가고파라 아,
하늘 끝 어디에 꽃무덤이 있으리 지금은 네가 죽어서 내가 묻어주지만
이 몸 어느날 죽으면 그 누가 묻어줄까 봄이 왔다 가듯이 꽃이 피었다
지듯이 사람도 한번 왔다 가고 말 것을 여기까지 엿듣던 보옥은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보옥의 옷섶에 담겨 있던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꽃넋인 양 바람에
흩날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