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일 담화는 정전협정의 효력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는 수차례에
걸친 위협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국내외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중립국감독위원회 사무실을 폐쇄하고 다시 10월에
미국이 평화보장체계를 거부할 경우 정전체제를 완전히 청산하겠다고 위협
하는 등 상징적인 조치를 취해오긴 했으나 이번처럼 비무장지대내 행동원칙
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었다.

북한의 이번조치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정전협정부속문서에 "표식물을
착용"하도록 한 비무장지대 출입규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이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자유롭게 출입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은 이번 담화를 계기로 비무장지대 북측지역의 무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높다.

이들 지역에 대한 무장화를 사실상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비무장
지대 남측지역이 "무장화된 지역"으로 변했다고 강변하며 이에 대한 대응
조치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북한의 무모한 정전협정파기시도는 무엇보다 북미간 평화협정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게 국내외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도 스스로 휴전협정당사인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지난달 8일에는 북한군판문점대표부 비망록을 통해 평화협정의 전단계인
잠정협정체결에 응하지 않을 경우 "최종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시기적으로도 북한은 이달중 미국과의 미사일회담을 앞두고 있어 강도높은
엄포와 위협을 동원할 필요가 컸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권력층은 남북한간 긴장관계를 과장함으로써 대내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주민들의 불평불만을 무마하는데 이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발표하기에 앞서
베트남 말레이시아 러시아 등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미잠정협정체결
공세를 선전하는 등 분위기조성에 안감힘을 썼었다.

정부가 일단 한미간 안보결속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추가적인 움직임을
주시하되 필요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대처하려는 것도 이같은
북한의 속셈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