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이니 수질오염이니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500여년
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올바른
환경윤리의식을 지니고 살았다.

한 예로 "문종실록"에는 1450년 각 고을에서 궁궐에 진상하는 은어를
잡기 위해 독약을 쓰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까지 멸종되고, 그 물이 논에
흘러들어 벼까지 손상시킨다는 보고를 받은 왕이 어명으로 은어잡이를
금지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안정성이 유지되는 선까지가
한계라는 사실을 그때 사람들도 이미 깨닫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처럼 자연과의 조화를 이뤄갔던 조상들의 삶의 태도가 "금수강산"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토는 저돌적 개발로 훼손됐고 수질오염과
공해도 심각해졌다.

"금수강산"이란 옛 말이 됐으며 도시의 가로수조차 공해에 찌들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식목의 절기를 맞아 서울의 가로수 24만여 그루중 플라타나스
(46%) 다음으로 41%나 차지하고 있는 은행나무가 가로수로는 적합치
않다는 한 식물학자의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다는 것 외에는 산소방출량이나 청량효과
면에서는 한때 가로수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플라타나스의 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다른 수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로수도 이제는 공해를 막아주는 "환경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경외 도로 옆에 잡목을 많이 심었는데 근래에는 잇달아서
나무를 심지 아니하고 전에 심은 것도 잘라내어서 남은 것이 없으니
옛 제도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청컨대 오는 봄부터 경외의 큰 길 좌우에 토양에 따라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나무를 많이 심고 그것을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소서" 단종 원년 (1453년) 5월 의정부에서 왕에게 올려 재가를 얻은
조선왕조최초의 "가로수 식재계획"이다.

도로의 표지로 나무를 심었다는 주나라 제도를 거론하면서 가로수를
심을 것을 강조하는 점이나 잣나무 배나무 등 유실수와 목재용 나무를
심자는 주장도 흥미롭다.

한때 유행했던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는 노래도 전혀 허황된
얘기는 아니었나 보다.

공해에 강한 새품종을 개발해 가로수를 교체하는데만도 7~10년의 세월이
걸린다니 공해가 없었을 옛날 서울의 자연환경이 부럽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