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부좀 합시다"

연수라는 명목으로 일본을 찾는 비즈니스맨들에게 한번은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박사학위라도 따라는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연수하러 온다면 최소한의 준비정도는 하고 오라는 뜻이다.

비즈니스맨들의 일본방문은 정말 뻔질나게 이뤄진다.

대형그룹의 경우 한곳에서만 연수만명이 오가니 나라전체로 본다면
수십만명은 족히 될 것이다.

앞선 기술을 배우고 몸에 익힌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일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런 것들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주일상사맨들은 "연수단이 수십차례 오더라도 다음에 오는 팀이 앞팀보다
진전된 노하우를 익히고 가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연수단들이 일본기업에 물어보는 내용도 거의 똑같다.

방문단을 맞이하는 일본기업인들이 오히려 의아해할 정도다.

뒷팀이 앞팀의 연수내용을 조사하지 않을 뿐아니라 앞팀이 자신들이 익힌
내용을 뒷팀에 전해주는 일도 없다는 얘기다.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그내용을 보고해 관련직원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일본기업으로서는 상상키 힘든 일이다.

한국연수단을 맞는 일본기업은 처음에는 몹시 긴장을 하고 많은 준비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되면 담당자가 아예 더이상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

몇번만 경험해보면 질문이란 것이 항상 그것이 그것임을 금방 파악해
버리기 때문이다.

입장이 곤란한 것은 오히려 주재원들이다.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연수를 실현
시키지만 왜 오는지 알수없는 방문만 거듭되니 오히려 부끄러움과 허탈함만
느낀다.

"그런 정도라면 앞팀에 물어도 충분한 것 아니냐"는 반문에는 저절로
얼굴까지 붉어지게 마련이다.

아무런 준비없이 연수에 임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해외연수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 본사의 담당자들도 문제다.

많은 자금을 투입해 얻은 노하우를 회사전체가 활용치 못한다면 그것은
담당자들의 업무태만이자 외화낭비다.

본사에서는 해외연수를 바람좀 쇠게 해주는 "보너스"정도로 간주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해외여행이 특별할 것도 없게 된 지금 연수도 확실한 목적을
가진 출장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