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화 <미 시세로스틸 사장>

얼마전 포브스지에 한국철강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과거 포철이 한국 기업인 길들이기의 방편으로 철강을 배급제로 공급한
적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연간 500만t 이상의 철강이 필요한 한국 기업들이
철강업에 진출하려는 의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철강업처럼 투자규모가 크고 공장설비 기술과 경영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업종도 드물다.

철강은 모든 공업의 기초산업이며 철강의 수요공급과 가격구조는
우리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체제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철강원가가 수출품의 가격을 결정하고 수출품의 가격은 우리경제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포브스지가 뭐라고 하든 우리의 1,000억달러 수출달성은 양질의 철강재를
적절한 가격으로 적시에 공급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2,000억달러 수출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수출물량 대부분의 주요자재가 철강 또는 기타금속이라고 볼때 철강
생산량은 지금의 두배가 돼야 한다는 견적이 나온다.

철강 수요공급에 관해 복잡한 경제이론이 나오고 찬반 묘안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선 앞으로는 종전과 같은 자국산업 보호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세계화에 뒤따르는 시장개방, 기업의 매수합병및 침략으로부터 산업을
보호하려면 기업자체의 힘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

한때 일본의 철강업은 미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혁신적인 방법이 강구되지 않는한 일본 철강업의 장래는 시간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철강업계도 혁신이 요청되는 때다.

수출 2,000억달러 달성과 함께 철강왕국 건설도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로
세워야 한다.

좁은 국토와 원거리 시장등 불리한 여건속에서는 철강왕국 건설이야말로
수출물량 순익신장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철강재료를 자체 생산할 수 있게 권장해야 하며
기존의 철강기업 보호정책은 계속돼서는 안된다.

비능률적인 기존 공장들은 빨리 통폐합해야 하며 과감한 투자와
기술혁신도 뒤따라야 한다.

국제 통상 산업분야에서 정부기관이 민간기업체보다 더 능률적으로
활동하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없다.

특히 철강업의 경우 원재료수급 제조 판매 납품등 수많은 변수들이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되므로 정부가 기본자료만 가지고 중대한
정책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포브스지의 주장처럼 납기요건을 기업길들이기 방편으로 남용했다면
이는 심각한 반경제적인 처사이다.

이같은 여건을 감안, 수출 2,000억달러 달성과 철강왕국 건설에 필요한
몇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철강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요량이 700만t 이상인
대기업에는 신규 철강업 허가및 자본과 기술의 과감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포철과 극소수의 공장을 제외하고 과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곳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 또는 신규 공장의 원가를 국제수준과 유사하도록 적극
인하해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로서 전기 가스 등을 포함한 에너지경비 감소,
투자재원장기저리 대출 및 세금체계의 융통성있는 보완 등을 들수 있다.

셋째 철강공장의 고로와 전기로의 장단점및 시장수요 요건 등을 연구
검토, 지금 통용되고 있는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와 비슷한 개념의 표준
한국형 제철소를 창안, 장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리적 경제적 조건과 기술 인력 노동등 한국적 제반사정이
모두 포괄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넷째 철광석 또는 고철등 원재료 확보와 원활한 수급을 위해 제3국과
정부차원에서 밀접한 경제외교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현지투자도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 장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원재료의 효율적인 수송방안도 연구해 원가절감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비능률적인 기존업체의 처리이다.

대기업이 새로운 설비를 도입, 공장을 건설한다면 대략 기존업체의
2~3할이 전업을 하거나 시설재투자들 전면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당국은 경영자문으로 전업을 장려하거나 시설투자및 기술지원이
가능한 여건을 갖춰줘야 할 것이다.

이같은 방안이 시행될 경우 기존 업계로서는 심각한 혼란과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철강왕국으로 건설하기 위한 길이라면 겪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른다.

험난한 세계 경제여건은 철강업계의 새시대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