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벽되지 아니하고 상하귀천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다.

조선만을 위하여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즉 정부에서 하는 일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해 피차에 유익한 일을 있게할
따름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896년 4월7일.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창간호 사설을 통해 독립신문의 나갈 길을
이렇게 말했다.

금권.권력에 꺾이지 않고 중립을 지킬 것이며 조선의 계몽을 위해
일하겠다는 선언이다.

우리 신문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들 민족지는 의병의 무장투쟁 국채보상운동 지원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독립신문에 영향을 받아 독립신문 창간 2년후인 1898년 매일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등 한말의 대표적인 3개 민간일간지가 등장해 계몽운동을 펼쳐갔다.

특히 제국신문과 황성신문은 한말민족지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면서 1910년
한일합방 무렵까지 발간됐다.

한일합방후 일제가 제도적인 언론통제를 가하면서 언론계에 한동안
암흑기가 이어졌다.

한인들에 의한 민간지가 다시 탄생하게 된것은 20년대초.

1920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에 이어 24년에는 최남선의 시대일보가
창간됐다.

이들 3대 민간신문들은 20년대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뚜렷한 항일
노선을 유지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수차례에 걸쳐 정간당하는 아픔을 겪기도했다.

해방후 설립된 이승만정권은 독재체제를 구축키위해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한말부터 일제치하를 거치는 동안 저항적 성향을 지녔던 언론은 자유당
정권을 비판했고 권력은 언론을 탄압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1955년의 대구매일 테러사건과 1959년의 경향신문 폐간사건은 자유당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건이었다.

당시 정권에 대한 언론의 투쟁은 4.19혁명을 유도하는 원동력이 됐다.

5.16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정권은 언론사를 기업적 카르텔형태로 묶어
통제했다.

언론도 경제논리에 압도돼 경영면에서는 안정되기 시작했으나 언론자유는
크게 위축됐다.

이에 따라 언론자유수호를 위한 일선 기자들의 투쟁이 꾸준히 전개됐다.

지난 74년 동아일보 광고 무더기 해약사태, 86년 "말"지의 보도지침 폭로
사건등은 70, 80년대 언론자유수호 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기간 언론계 전반적으로는 군사정권의 탄압에 맞서기보다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우리 경제가 크게 성장하자
60년대들어 경제신문이 속속 등장했다.

1960년 한국일보가 서울경제신문을 창간, 최초의 근대적 경제신문이
탄생하게 된다.

이어 1965년 10월12일 한국경제신문의 전신인 현대경제일보가 등장했다.

또한 66년에는 매일경제신문이, 72년에는 무역협회가 발행했던 일간내외
경제가 창간, 경제신문의 경쟁체제가 시작됐다.

서울경제신문과 일간내외경제는 지난 80년 신군부 등장이후 단행된 언론
통폐합조치에 따라 폐간됐다가 6공화국들어 복간되는 과정을 밟기도 했다.

경제신문은 경제정책 산업 증권 유통 부동산 과학기술등분야에서
"경제정론"을 펼치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방향을 제시하고 일반 기업에 유익한 경영정보를
제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들어 우리경제가 국제화되고 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경제신문은 해외산업뉴스등 정보의 폭을 넓혀왔다.

경제지는 특히 선진 과학기술및 경영노하우를 국내에 전파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동안 지속돼온 언론카르텔은 지난 88년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없어져
버렸다.

뒤이어 5공화국시절 폐간됐던 중앙지및 지방지들이 복간되고 민주화바람에
힘입어 무수한 신문들이 창간됐다.

이와 함께 우리 언론계는 증면등 무한경쟁시대를 맞게 됐다.

점점 개방화되어가는 사회추세와 맞물려 기자들의 취재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각 신문사들은 컴퓨터제작시스템(CTS)을 도입하는등
신문제작의 질적인 변화를 추진하고있다.

기자 역시 컴퓨터로 무장됐다.

일선 취재기자들은 사건현장에서 노트북컴퓨터로 기사를 작성, 공중
통신망을 통해 전송할 수있게 돼 더욱더 신속한 보도를 할수 있게 됐다.

기자의 상징이 기존 "펜과 원고지"에서 "컴퓨터"로 바뀐 셈이다.

그런가하면 각 신문은 뉴스전달이라는 고유의 역할이외에도 각 사의 특성에
맞는 사회계도사업을 개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일부 신문이 추진중인 "노사 새지평을 열자" "인터넷 교육" "환경살리기
운동"등의 캠페인은 우리 신문이 사회발전을 선도하고있다는 점에서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