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인이 보옥이 열거하는 약재 이름들을 들어보니 인형대엽삼이나
하수오 복령담 같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겠으나 두태자하거라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보옥에게 그것에 대해 묻자 보옥은 우쭐해 하며 설명을 하였다.

"그건 여자가 낳는 첫아기의 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 태 안에 사람에게 좋은 성분들이 가득 들어 있거든요.

그거 하나 구하는 데만 해도 수백 냥이 들 거예요.

근데 난 좀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을 알고 있거든요"

왕부인은 보옥의 말을 들으며 비위가 상하는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약에 관한 이야기를 대강 마치고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보옥은 급히 밥을 먹고 차로 입가심을 하였다.

"오빠는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탐춘이 한마디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녀가 들어와 바깥에서
배명이라는 하인이 보옥을 찾는다고 하였다.

보옥이 왕부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가보았다.

과연 배명이 허리를 구부린 채 서 있었다.

"왜 나를 찾는 거야? 또 무슨 거짓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일전에 배명이 설반의 지시를 받아 가정 대감이 보옥을 찾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진짜라는 말에 보옥의 가슴이 철렁하였다.

지금은 정말 아버지가 부르는구나.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보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풍씨댁 도련님이 오시래요"

아, 풍자영이 전에 약속한 대로 초대를 하는구나.

보옥은 오늘밤 풍자영네 집에서 벌어질 연회를 떠올리며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보옥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배명 서약 쌍서 쌍수 네 하인들을
데리고 풍자영의 집으로 갔다.

주안상이 차려진 방에 설반과 정일흥 첨광 호사래 선빙인 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배우 장옥함과 금향원의 기생 운아도 앉아
있었다.

생글거리며 남자들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운아를 보자, 보옥은
오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빙긋이 웃음을 흘렸다.

"그래 사냥터에서 생긴 그 큰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일이 무엇이오?

그 동안 그 일이 무엇일까 궁금했다니까"

보옥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그 질문부터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