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든지, 덧없었든지 4.11총선 투표일은 모래로 다가왔다.

후보측으로선 그동안의 성과가 아무리 찜찜하고 미심해도 오늘 내일 이틀새
무리를 하면 불행의 우물을 파는 결과다.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양심의 명대로, 최선이 없으면 차선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당황하고 때로는 무리를 저지를수 있는게 인간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잠시 숨을 돌려 가다듬으면 여유가 생겨서 평생 후회할,
저질러선 안될 일을 비켜 가거나 체념함으로써 고비를 넘게 된다.

총선에서도 마찬가지다.

투표전 9~10양일은 후보 개인과 그 측근, 정당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게
있어 다시 생각하도록 마지막 허용된 귀중한 시간이다.

만일 욕심에 말린 나머지 양심의 명령에 등을 돌려 일을 저지르고 나면
뒤에가서 후회해야 소용이 없다.

구테여 형장이 이슬로 사라진 3.15 부정선거 원흉들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욕망에 포로가 되어 자제를 잃던 끝에 역사의 준엄한 심판앞에 일족이
황망해하는 모습들에서 교훈을 얻는다.

핏보다 민주정치 만악의 근본인 선거부정을 방치해선 후회함 기로가
꼭 올 것이다.

새 선거법이 엄존함에도, 공명선거의 시대적 갈구가 이리 충천함에도
정권이 만일 혼탁선거를 계속 방치할 경우, 당사자들의 불행은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암담해진다.

이번에도 선거부정이 유아무야된다면 그 응보는 클 것이다.

필요하면 무게가 실린 특별절차를 마련해서 라도 정부와 사직당국은
백벌백계, 철저한 문책으로 옳지않은 부정을 바로 잡아야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순간 노도같은 저항이 지축을 흔들지 말라는 보장이 아무데도 없다.

이미 1960년에 선거부정이 혁명을 부르고 주동자들에 극형이 내렸을진대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오늘에 와서도 선거법이 있으나 마나, 태산명동에
쥐한마리로 유명무실 한데서야 어찌 감히 역사발전이라 할수 있는가.

이제 시간은 많지 않다.

민주 선진국들이 선거를 궤도에 올려 놓는데 2세기전후의 오랜 기간이
소요됐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에 관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48년 첫선거 이후 48년동안 우리는 50회에 가까운 대소선거를 치렀다.

그것은 결코 짧다고 봐줄 연륜이 아니다.

과거 타국발전에 소요된 기간을 후발자가 단축치 못한다면 한국의 선진
대역 동참은 불가능하다.

만년 후진국 신세다.

이제 국민 각자가 총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후보측은 흡족치 못한 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불법수단으로 만화하려다간
소탐대실을 당한다.

남은 이틀 정당히 정성을 다할때 효과는 의외로 커진다.

유권자는 나하나 어떠랴.

하찮은 유혹에 인격을 팔지 말아야 한다.

탄식 한편에선 아직은 돈이 덜 뿌려진 선거라는게 중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표를 모아 주마, 돈받아 주마하는 선거 중간상, 표 집하상들의
농간이다.

이틀간 특별히 수요-공급 양측 모두 이신종 브로커들을 경계해야 북한의
농간까지 극복하는 전화위복이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