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부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이 곪았다는 것은 누구나 도래전부터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 정도가 생각하는 것이상으로 심한 것같아 더욱 걱정스럽기만
하다.

최근 은행감독원이 관련규정을 개정,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을 종전 100%에서 75%로 낮춰주기로 했다는 보도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은행부실"을 엿볼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대손충당금을 종전규정대로 다 쌓도록 하면 거의 전은행이 적자를 낼수
밖에 없고, 그래서는 대외적으로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충당금 적립비율을 낮추는 편법을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작년말 결산때도 종전까지 1005 쌓도록돼있는 유가증권
평가손 충당금을 30%로 낮춘 은행감독원의 "편법"에 힘입어 겨우 명목상
흑자를 냈었는데 올해에는 그것 가지고도 흑자결산이 어려울 형편이어서
부실여신 대손충당금까지 깎아줘야 하는 편법이 나오게된 셈이다.

이번에 은행감독원이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낮춘 이른바 "치수의문여신"은
사실상 치수가 어려운 고정대출 중에서도 담보권소멸 보증인 행방불명 등의
사유로 대손발생이 확실시되는 악성채권만을 의미한다.

절차상 손실액이 확정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거의 전액 건지지 못할게
분명한 것들이다.

그 총액규모에 해당하는 대손충당금을 설정, 상각처리하는 것이 회계원칙상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자 없다.

실제로 상각처리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충당금을 전액 적립하는
것 조차 어렵다는 것은 정말로 심각한 일이다.

그동안 시중은행등은 대손충당금을 쌓기는 하되 수지가 나쁜 해에는 실제
상각처리는 줄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흑자결산"을 해왔다.

15개 전국규모 일반은행의 대손충당액이 94년 1조6,000억원 95년 8,300억원
으로 차이가 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대손충당금은 적립액중 실제 상각액을 뺀 나머지 부분은 그 다음해에
수익으로 환입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 한해뒤만 내다볼수 있는 여유만 있어도 적립 그 자체가 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아니다.

바로 그런데도 유가증권 평가손 부실여신등의 충당금 적립비율을 계속
낮춰야 한다는 것은 은행경영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게 한다.

어쨌든 허울만 그럴듯한 "흑자"를 낸다고 은행부실이 해소되는게 아니라고
볼때 은행감독원의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인하조치는 문제가 있다.

속은 곪아있는데 명목상 흑자를 내 주주에게 이익배당을 하는 금융관행은
그 자체가 은행부실을 가중시키는 행위다.

은행감독당국이 충당금 적립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관제분식
결산이라고 할수 있다.

당연히 하지말아야 할 배당, 내지않아도 좋을 세금을 내는 부담을 한더라도
꼭 은행이 흑자결산을 해야할 이유는 없다.

대출에는 물론 주식매매에까지 부당한 간섭을 해온데 대한 책임때문에
감독당국도 흑자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면 혼돈도 그런 혼동이 없다.

은행경영 건실화를 위한 감독당국의 깊은 자기성찰이 긴요한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