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백8개 개표소에서 철야로 진행된 4.11총선 개표는 간발의 차로 당락
이 엇갈린 지역이 많아 시종 땀을 쥐게 했다.

전국 2백53개 선거구에서 1,2위의 차이가 거의 없는 1천표이하로 당락이
엇갈린 선거구는 모두 16개에 이르렀다.

국민회의 중진인 김상현의원은 서울 서대문갑에서 30대 정치신인인 이성헌
후보에게 곤욕을 치렀다.

김의원은 투표함이 열리면서부터 개표가 종료될때까지 1백~3백표차로
쫓기며 추월위기를 맞았으나 결국 2만9천9백79표를 얻어 5백91표차로 5선
고지에 올랐다.

대구 중구에서 정치원로인 자민련 박준규선대위공동의장은 신한국당
유성환전의원과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5백52표차로 승리를 낚아
김영삼대통령에 이어 최다선인 9선의원이 됐다.

수원 장안에서 신한국당 이호정후보에게 설욕전에 나선 6선의 자민련
이병희후보도 막판에 대역전극을 창출하는 뒷심을 발휘, 관록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충북 청원의 경우 당초 낙승이 점쳐졌던 신한국당 신경식후보는 녹색바람을
앞세운 오효진후보에게 한때 뒤지는등 고전하다가 불과 3백75표차로
가까스로 이겨 최소득표차 당선이라는 행운을 안았다.

민주당이 당선안정권으로 꼽았던 부천 오정의 원혜영의원은 중반까지는
앞서 갔으나 개표종반에 국민회의 최선영후보에게 역전을 허용, 결국 3백
90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춘천을의 자민련 유종수후보는 가장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경우.

유당선자는 개표초반 신한국당 이민섭후보에게 큰 표차로 뒤졌으나 중반
이후 추격에 나서 결국 4백10표차로 이후보를 따돌렸다.

반면 서울 금천의 신한국당 이우재후보, 대구동을 무소속 서훈후보, 대구
달서을 무소속 이해봉후보, 문경.예천의 신한국당 황병태후보등은 개표초반
상당한 표차로 상대후보들을 앞서갔으나 개표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상대
후보들의 거센 추격에 휘말려 가슴을 졸인 경우.

이들은 결국 초반 우위를 바탕으로 4백~7백표차이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한편 안양 만안의 자민련 권수창후보와 홍천.횡성의 신한국당 이응선후보는
2위는 물론 3위와도 1천표이내의 차이로 승리를 거두는 대접전을 치렀다.

<김태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