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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창 청구그룹고문(70).

그는 우리나라 주택업계의 산증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지난 86년 3월 한국주택협회회장으로 취임한뒤 무려 10년동안이나 장기
재임하면서 국내주택업계의 부침을 지켜봐왔다.

부동산투기바람이 온나라를 휩쓸던 88년 신도시개발을 주장, 주택 2백만호
건설에 앞장서기도 했다.

주택경기가 바닥세로 곤두박질치면서 손꼽히던 건설업체들이 도산의 비운을
맞이한 모습은 그에게 회한으로 남아있다.

만10년간의 주택협회회장에서 지난 3월말 물러난 그는 4월초 청구그룹고문
으로 영입돼 아직 남은 일을 찾고 있다.

지난 2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46년 육군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
한국전에 참전했던 유고문은 예비역장성(중장) 출신.

70년대초 국방부차관 원호처장을 거쳐 79년 한국토지개발공사(현 한국토지
공사)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처음 주택업계와 인연을 맺은뒤 줄곧 주택업계의
일선에서 경영자로, 또 단체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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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사회2부장 ]]]


-10년동안이나 맡았던 주택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나신데 대한 감회가
어떻습니까

<> 유고문 =보람과 함께 회한도 많습니다.

특히 그동안 정부시책에 적극 동참해 주택물량을 대규모로 공급, 국민들의
내집마련에 상당한 기여를 했던 한양 삼익 라이프 우성등 쟁쟁한 건설업체
들이 한순간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만게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규제일변도의 정책만 고집해온 정부책임도 커요.

-협회 회장재직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면.

<> 유고문 =역시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200만호 건설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자고나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1년사이
아파트 가격이 3~4배로 폭등했습니다.

집없는 서민들의 내집마련에 대한 꿈이 깨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신도시 건설정책의 입안에 직접 참여하고 그 집행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무어라고 해도 신도시개발을 통한 주택 200만호 건설은 집값을 안정시키고
부동산투기를 잠재운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요.

-그렇더라도 당시의 무리한 200만호건설이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신도시를
베드타운으로 전락시켰으며 부실공사등 많은 문제를 낳은 것도 사실이지요.

<> 유고문 =당시로서는 모든 것을 고려할수 없었던 탓입니다.

5~6년안의 짧은 기간동안 분당 일산 평촌등 4개의 신도시를 건설하려다
보니 애당초 제대로된 자재및 인력수급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자재파동, 인력난에 따른 가파른 노임상승, 불량자재로 인한 부실공사등은
어느 정도 예고됐던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는 30~40년에 걸쳐 건설하는 신도시를, 그것도 4개씩이나
한꺼번에 건설하는 과정에서 만족할만한 도시기반 시설이 갖춰질수 없고
그러다보니 베드타운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신도시건설이 쾌적한 주거환경확보에 실패하고
끊임없는 부실과 안전문제로 주민들을 불안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간이 가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주택건설업체는 "땅에 말뚝박고 집팔아 돈버는"식의 경영을
해왔습니다.

아파트 분양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치부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요즘 몇년사이에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이미 내로라하던 주택업체들이 부도의 비운을 맞지 않았습니까.

<> 유고문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건설업체들이 과거의 만성적 초과수요시절 시장상황에 길들여져 정확한
수요예측없이 대강대강 사업을 벌인 탓이 커요.

여기에 대기업들의 잇따른 주택사업진출로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기술력
상품경쟁력보다는 자금능력만을 앞세워 수익성낮은 공사를 계속 수주하면서
속으로 곪아들어간 것이지요.

-건설업계의 위기, 누적된 미분양아파트, 부실공사의 문제...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방안은 없겠습니까.

<> 유고문 =무엇보다 규제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추구를 위한 집단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를 짓는데 평당분양가격은 얼마로 하고, 몇평짜리
이상을 지으면 안되고 하는 식으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지요.

공사비용산정도 그래요.

미장에 얼마, 토목공사에 얼마, 자재비는 얼마 등으로 획일적입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냥곽같은 똑같은 아파트를 지을수밖에 없어요.

현실에 맞지 않은 가격통제로 기업들은 손해보지 않기 위해 값싼 자재,
싼 노동력으로 질낮은 제품을 양산할수 밖에요.

소비자는 눈을 돌리고 미분양아파트가 쌓이는데 규제는 여전히 지속됨
으로써 악순환을 피할수 없게 되는 겁니다.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분양가통제를 풀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난센스예요.

규제를 풀면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고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수
있는 서비스방법이 창출됩니다.

실제 시범적으로 원가연동제와 분양가자율화가 실시되고 있는 시장에서도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는 현상을 찾기 힘들어요.

또 지금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입니다.

그만큼 소비자의 취향도 다양해졌어요.

주택도 상품인만큼 비싼 집을 원하는 계층에는 고가주택을, 서민에게는
실용적이고 저렴한 집을 공급할수 있도록 다양성을 부여해 주어야 부실공사
의 문제도 해결되고 업계의 경쟁력도 키워질수 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우리국민은 이미 여러차례
부동산투기바람에 크게 데인적인 있습니다.

갑작스레 가격규제를 풀 경우 또다른 부동산투기의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정부는 그런 점때문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것 같은데요.

<> 유고문 =이제 과거와 같은 투기바람이 다시 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부동산실명제 금융실명제 토지거래전산망가동 등으로 부동산투기를 막을수
있는 그물망이 촘촘히 짜여져 있어 투기위험은 거의 사라졌어요.

만에 하나 투기가 발생하더라도 투기자를 철저히 추적해 이익을 본만큼에
대해 확실히 세금을 부과하면 됩니다.

제도 자체는 거의 완비된 셈이므로 그것을 제대로만 운용하면 부동산투기는
충분히 막을수 있다고 봐요.

-요즘 20년도 안된 아파트들을 헐고 다시 새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사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국가경제적인 손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 유고문 =그것도 과거 근시안적이었던 주택정책, 규제와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어요.

획일적인 통제로 좁은 평수의 닭장같은 집만 잔뜩 지어 놓았는데 지금은
소비자들이 보다 큰 평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입주자들 입장에서야 큰 평수의 새집을 갖게되는 이득이 있겠지만 20년도
안된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것은 지나친 낭비입니다.

아파트철거에 따른 건축폐기물 처리문제도 심각해요.

선진국처럼 100~200년은 못가더라도 처음부터 제대로된 계획을 수립,
적정한 높이로 50년정도는 버틸수 있는 아파트를 지었더라면 그 동안의
부동산투기 전세값파동 등은 상당부분 막을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과밀하고 국민들의 집소유 의식이 두드러진 여건
에서는 가장 어려운 것중의 하나가 주택정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유고문 =그만큼 각별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고 일단 세워진 정책은
일관성을 갖는게 중요합니다.

아쉬운게 있다면 제가 주택협회장을 10년 맡는 동안 거쳐간 건설부장관만
12명입니다.

주택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수뇌가 평균 1년에 한번 이상꼴로 바뀐 것이지요.

이래서야 소신있고 일관성있는 정책이 나올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주택정책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물가안정 부동산투기방지 등의
논리에 밀려 난맥상을 보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일본 고베 지진이 발생한후 우리도 철골 아파트를 짓고 분양가
통제를 풀자고 강력히 주장했더니 작년 11월에 푼다고 했다가 해를 넘기고,
올해 1월부터 한다고 했다가 선거앞두고 다시 연기되고, 이제 5월부터
분양가를 자율화한다고 합니다.

일관성없는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투기의 한 요인이 되는 겁니다.

-올해 고희를 맞으셨는데 몹시 건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이라도 갖고 계신지요.

<> 유고문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체질을 타고났나 봅니다.

거기다 오랜 군인생활을 통해 몸이 다져졌습니다.

지금까지 몸이 피곤하거나 아파서 하고자 한 일을 못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해요.

잔병치레도 없고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에 열중하는게 건강유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