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준비가 안됐거나 시행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정책을 졸속으로
발표해놓고 뒤늦게 시행을 연기하거나 유보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특히 선거를 의식,무책임하게 남발해버린 정책에 대해 선거가 끝나자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 트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합작은행에 대한 내국인지분제한 재검토,자동차보험료 자유화연기,리콜제도
전품목 확대시행 유보,수도권 첨단공장 증설허용 지연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합작은행에 대한 내국인 지분한도 제한문제의 경우 재정경제원은
당초 내국인 지분을 외국인 최대주주의 지분율이내로 제한키로 했었으나
이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당초 재경원은 국내기업의 은행지배를 막기위한 보완책이라고발표했으나
경제차관회의에서 조차 외국과의 통상마찰이 우려될 뿐 아니라 국내기업의
주식매각에도 어려움이 따르는등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이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렸다.

재경원은 또 자동차보험료중 기준보험료를 4월부터 자율화하기로
했었으나 제대로 준비가되지 않은데다 책임보험료인상등을 이유로
시행시기를 8월1일부터로 연기했다.

리콜제 역시 4월부터 전품목에 대해 확대 실시한다고 발표했으나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식품이외의 품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안전이나
하자기준이설정되지 않아 아예 시행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와함께 통상산업부는 지난해말 반도체업종에 대해 수도권에서
기존면적의 25%까지 증설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환경문제등에
걸려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이 바뀌지 않아 아직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은행은 제2금융권기관에 대해 지난 8일부터 역스와프제도(기관
에 원화를 외화로 바꾸어 주어 해외투자자금으로 활용토록 하는
새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실적으로 활용가치가 없어 시행이
보류되고 있다.

또 근로소득세를 추가로 경감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세수감소가
예상되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경제계에선 "정부가 현실적인 시행 가능성이나 여건을 충분히 계산하지
않은채 탁상에서 정책을 생산해 발표해 놓고 나중에 번복하는 일이
잦아지면 기업들이 의사결정에 애로를 겪게 된다"며 "경제가 실험대상이
되어선 안되는 만큼 새로운 제도나 아이디어를 내놓기 전에 반드시
부작용이나 실현가능성을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김선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