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아침에 눈을 뜨자 습인이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를 높여 말했다.

"어, 간밤에 도둑이 들었나? 내 러리띠가 없어졌어"

습인이 벌떡 일어나 보옥에게로 달려와 확인을 하였다.

정말 보옥의 허리에 매여 있던 허리띠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허리띠가 엉뚱하게도 자기 허리에 매여 있지 않은가.

습인은 자기가 자고 있는 동안 보옥이 장난을 친 것을 눈치 채고
허리띠를 풀었다.

"도둑이 와서 도련님 허리띠를 풀어 내 허리에다 매어놓았네요.

고얀 도둑 같으니라구. 자, 허리띠 여기 있어요. 가져가세요"

"아니야. 됐어. 습인이 너 가져. 습인이 나에게 선물로 준 허리띠를
장옥함에게 준 것 사과하는 뜻에서 습인에게 주는 거야"

"이러면 장옥함 배우에게 잘못하는 거잖아요.

그가 도련님에게 선물로 준 것인데 그걸 나에게 또 주면 어떡해요"

습인이 허리띠를 보옥에게 내밀었다.

"괜찮아. 장옥함이 여기 이홍원으로 와볼 리도 없고. 습인이 가지라니까.

붉은 허리띠가 습인에게 잘 어울려"

습인은 할 수 없이 다시 그 허리띠를 매고 한나절 정도 지내다가 보옥이
밖으로 나갔을 때 그것을 풀어 빈 궤짝에다 집어넣고는 다른 허리띠를
꺼내 매었다.

보옥이 얼마 후 이홍원으로 돌아와 습인이 허리띠를 바꿔 맨 것을
보았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보옥은 시녀들에게 어제 후비인 원춘 누나가 단오절 선물로 보내온
물품들을 가져와 보게 하였다.

시녀들이 가져온 물품들을 보니, 궁중에서 쓰는 상등품 부채 두 자루,
홍사향 염주 두 벌, 봉황 꼬리 무늬가 새겨진 비단 두 필, 부용 무늬가
수놓인 방석 한 장 들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보냈는가?"

보옥이 습인에게 묻자 습인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보채 아가씨는 도련님과 똑같은 선물들을 받았는데 대옥 아가씨는
부채와 염주만 받았어요.

그래서 대옥 아가씨가 여간 서운해 하지 않았어요"

"보채 누이하고 나한테 똑같은 선물을 보낸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

보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옥이 그렇잖아도 보채를 시기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더욱 마음이 상했겠구나 염려가 되었다.

원춘 누나가 그런 식으로 선물을 보낸 것은 대옥이 보채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속셈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