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보 <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

흔히 경제를 흐름이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경제는 9%를 상회하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도 물가상승
을 4%대에서 안정시키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는 성과를 이룩
하여 외형상 경제의 흐름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부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중소기업의 경영이 어려운 한해였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경제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은 필요로 하는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
되는 이른바 경기의 양극화라는 이상 현상을 나타냈다.

금융의 흐름측면에서 보면 금융이란 자금이 여유있는 곳(흑자)에서 부족한
곳(적자)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양자사이를 중개해 주는 곳이 곧 금융기관이다.

그러면 누가 자금의 여유가 있고 누가 자금이 부족한가?

경제의 주체중 가계와 정부는 흔히 흑자의 주체이고 기업은 대부분 적자의
주체로 불려진다.

흑자의 주체인 가계와 정부가 여유있는 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금융
기관은 이를 적자의 주체인 기업에 공급하여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계나 정부가 여유있는 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것을 기피하거나
은행등 금융기관이 기업등 적자주체에 자금공급을 주저하게 된다면 경제의
흐름이 원활해질 수가 없다.

최근에 대기업은 국내시장에서 직접금융의 조달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리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금융을 축소하고 있다.

은행등 금융기관은 대기업의 금융기관 이탈로 인해 전에 비해 자금여력을
보유하게 되자 대출세일까지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작 중소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조달하지 못하여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이탈로 인한 여유자금을 중소기업에 지원
하려 해도 담보부족과 신용이 미약하여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기대한만큼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완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중소기업지원 관련기관및 각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여러가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 내용의 주요골자는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한 금융지원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은행이 공동으로 신용평가표까지 만들어 신용대출을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그 성과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같다.

과연 금융기관이 충분한 물적담보를 확보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활발한
신용대출을 해 줄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예금자 재산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금을 안전성,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예금자의 돈을 기업에 적절하게 공급하여야만 원활한
금융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만약 예금만 있고 대출이 없다면 예대마진을 통한 금융기관의 수입원이
감소될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은 비록 사업성이 있다해도 담보가 없거나 부족하여 금융기관으로
부터 자금을 차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의 문을 활짝여는데
아직 주저하고 있다.

이것은 금융의 흐름이 왜곡되어 있거나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이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신용평가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용으로 취급된 대출이 부실화 되었을 경우 금융기관 담당자에
대한 변상이 관행화되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

우리의 문화적 배경 역시 신용대출을 특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제반 여건들이 신용대출의 확대나 새로운 금융기법의 개발에
제약요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신용에 의한 대출이 확대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담보위주의 금융관행은 궁극적으로 금융의 후진성과 낙후성을
탈피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처한 제반 금융환경을 감안해 볼때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은 공신력 있는 신용보증기관에 의한 신용보완이 하나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생각된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취약한 신용을 보완하고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줄여
중소기업의 육성과 금융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이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를 활용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이용을 원활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사회가 금융의 선진화를 이룩하고 신용있고 유망한
기업이 제도금융권에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신용보증기관의
신용보완만으로는 자금융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우리사회에 신용경제를 확립하기 위한 토대가
하루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신을 공급해 주는 금융기관에서는 신용평가에 의한 대출을
확대하도록 여러가지 제도적인 개선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자본시장 개방및 금융자율화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신용평가
를 중시하는 금융기관의 대출행태에 발맞추어 높은 신용평점을 받기 위해
재무구조의 개선등 스스로의 신용관리를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업 스스로가 자신의 신용관리에는 소홀히 하면서 신용대출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이러한 제반여건이 성숙될때 중소기업의 자금융통도 원활해질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신용평가에 의한 신용대출이 확대되지 않고 담보위주의 금융관행이 계속
된다면 금융산업의 발전은 요원할 수 밖에 없고 금융의 흐름도 결코 원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중소기업은 경제적 약자나 대기업의 하위개념이 아니다.

활력있는 다수로서 경쟁의 주체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날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기업 우위의 경제정책이 이제는 범위의
경제로 이행해 감에 따라 최근에는 중소기업 우위의 경제정책으로 수정되어
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앞으로 닥쳐올 21세기에는 "중소기업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여건변화가 중소기업에 유리한 환경으로
조성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활성화 하여 중소기업이
경제의 흐름을 주도할수 있도록 중소기업과 "동반자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존 세더(John Seder)가 지적한 말은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신용의 부재로 입게 되는 손실은 어느 개인, 어느 기관만의 손실이 될수
없다.

그것은 신용사회의 부재라는 우리 모두의 손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