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정부가 예뻐하는 기업이 따로 있다.

고객이 아끼고 시장에서 강한 기업이 아니다.

기업인의 혁신정신과 그룹 총수의 계산된 도전도 지나치면 모가 난
기업이 된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보기보다는 비윤리적인
착취나 속임수라고 보는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한국에서의 반기업적인 정서는 한때 위험수위를 넘은 적도 있었다.

지난 15일 비자금사건 2차 공판에서 검찰이 전두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을 통해 예시한 기업탄압 사례는 "정치 헌금"과 "뇌물성 자금"을
구분짓기에는 불분명할지 몰라도 "열악한 기업 경영환경"과 "불법을
특권으로 아는 권력"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했다.

뇌물을 안 바칠수 없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했고 정부가 나서서,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주무장관이나 관계
보좌관을 동원하여 기업인들을 만나 돈을 건네 받았다는 사실이 비록
10여년전 일이라 해도 정치의 질곡에 찌든 경제를 물씬 느끼게 한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기업인들로부터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을 때 이를 기업인들은 "변화와 개혁의 정수"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윤리적인 경제인의 각성"을 나타내는 "정치헌금"이
이제는 없어졌다는걸 믿지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망령처럼 경제의 숨통을 눌러왔던 정치적 질곡의
뿌리가 워낙 강했고 크고 강해지는 기업들은 질시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무대로 사활을 걸고 밤낮 없이 뛰는 기업인들을 비아냥거리고
곡해를 서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탐욕을 나무랐고 종교인들은 물질숭배 세속주의를 야단쳤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기업들에 더 많은 헌금을 요구했다.

지식인과 언론은 형평을 내세워 경쟁을 억압하려 했다.

이제는 기업의 체질강화는 기업인들의 책임하에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현명한 소비자가 모양좋고 편리하고 값싼 상품을 만드는 기업의 편을
들도록 해야 한다.

통찰력있는 투자자가 성장하는 기업의 창조력에 모험적 투자를 하여
시장평가가 기업활력의 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활동에 관한 모든 차별적 정책을 없애야 한다.

첫째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기업경영에서 우대를 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권력자나 행정관료에게 예속되는 것을 강요하는 5-6공시절에
만들어진 경제시책과 행정규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단행해야 한다.

특히 여신관리 제도와 비업무용 부동산 관련 시책이 과연 올바른 정책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둘째 반기업주의의 뿌리가 경제력집중 억제시책과 맞물려 있다.

공정거래제도를 이제는 개방경제에 맞게 경쟁촉진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세계화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행정규제이다.

셋째 정부는 시장의 주도자가 아니고 기업과 같은 시장참여자일 뿐이다.

경제운영에 시장원리를 작동시켜야 한다.

경쟁촉진으로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