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석유화학이 제2 NCC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시기만 남겨놓고 있던 것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벌 때
투자한다"는 현대 특유의 전략을 엿보게 한다.

이번 발표는 또 정부의 석유화학 투자규제가 전면 해제되면서 발표됐다는
점에서 90년대 초에 이은 제2의 NCC 투자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현대의 증설투자 논리는 우선 일부에서 우려하는 유화전반에 대한
공급과잉현상은 없을 것이라는데 있다.

앞으로 아시아지역의 경제가 연평균 7-8%가 성장할 것으로 보여
유화업은 적어도 10% 이상 성장할 것이란게 현대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성장성 높은 아시아시장에서의 우위확보를 위해 설비를
확장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현대의 증설계획에는 또 대산 유화컴플렉스 전체의 효율성을 제고하여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적도 있다.

이곳 컴플렉스는 이미 건설되어 있는 항만 열병합발전소등 유틸리티
설비가 완전 갖춰져 있어 이의 가동율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돼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대의 증설계획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그러나 착잡하기만
하다.

우선 유도제품 생산량이 많아 자체생산외에 타사로부터 25만T이나 되는
에틸렌을 사다쓰는 한화종합화학의 경우가 그렇다.

이미 제2NCC건설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부지문제 등
투자에 따른 난제가 산적해있는 만큼 당장 건설에 들어가기는 어려워서다.

현대와 같이 유화산업에 뛰어든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종합화학 관계자가 "우리 회사의 경우 정밀화학분야에 집중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나 NCC증설에 대해서도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현대의 NCC투자와 관련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업계의 자율조정
문제다.

통산부는 지난해말 유화투자규제를 전면 폐지하면서 개별기업의 신증설은
업계의 자율조정을 거쳐 추진토록 했다.

유화공업협회는 지난2월 22일 총회에서 국내 10개 NCC및 관련제품
생산업체 대표로 민간투자자율조정협의회(민자협)을 구성키로 결의해
준비작업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회칙을 대부분 확정지어 조만간 민자협이 공식 출범하게
돼있다.

현대 관계자는 "민간투자자율조정협의회에 우리도 멤버로 참석하겠지만
정부로부터 투자제한이 풀린 이상 여기서 현대의 투자계획에 반대할 명분이
있겠느냐"고 자신해한다.

D유화의 L상무도 "투자과열이 문제이긴 하나 개별기업의 투자에 무조건
반대하기만은 힘들것 같다"며 다만 사업계획일부가 조정될 가능성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업계가 "뭉쳐서" 현대의 NCC증설을 반대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증설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다 반대한다고 해도 막을 수단이
없다.

그래서 현대를 민자협 테이블에 끌어들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현대의 양보를 구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통산부는 작년말 발표한 "유화산업 장기비전 및 발전전략"에서 오는
2000년까지 연산 40만톤 규모의 NCC가 2~3기 더 필요하다고 전망했었다.

업체의 NCC증설을 반대할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얘기다.

통산부 관계자는 "민간업체가 자기 책임하에 투자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민자협에서 이상적인 조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현대석유화학의 NCC증설건은 유화투자 자유화시대의 앞날을
가늠해보는 시금석으로 떠올라 있다.

민간업계가 적절한 자율조정으로 합리적인 투자를 유도해낼 수 있을지를
검증하는 첫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한 업체가 선투자를 하겠다는데 대해서 업계가 무조건 반대하거나
너도나도 선투자 업체를 따라가 마구잡이 투자를 하는 지금까지의 국내
산업풍토가 그대로 재현될 지 아니면 개선될지 두고볼 일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