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명절이 다가왔다.

조상 대대로 지켜오는 풍습대로 집집마다 대문에 창포와 약쑥 다발을
꽂고 사람들은 호랑이를 그린 부적인 호부를 완장 두르듯 팔에 찼다.

왕부인이 점심 식사에 설씨댁 모녀를 비롯하여 일가 친척들을 초대
하였다.

그런데 명절다운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가 감돌기만 했다.

보옥은 습인의 건강이 염려가 되어 명절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고
왕부인 역시 금천아를 내어쫓은 일로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시녀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하여 본보기로 금천아를 내어쫓긴 하였지만
십년이나 옆에서 시중을 들어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든 금천아가 아닌가.

보채와 대옥은 자기들 때문에 보옥이 침울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하여 점심 식사와 명절놀이가 시시하게 끝나고 모두들 짐짐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보옥은 차라리 명절 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가며
이홍원으로 돌아왔다.

다른 때 같은면 습인이 보옥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겠지만 오늘은
습인 대신 청문이 달려나와 보옥을 맞이하며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마님 방에서 재미있게 노셨어요?"

청문이 얼굴에 연지를 짙게 발라 연지 냄새를 푹푹 풍기며 보옥에게
물었으나 보옥은 대답할 기분도 아니고 연지 냄새도 역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이, 도련님 재미있게 노셨느냐니까요?"

청문이 보옥의 엉덩이께에 자기 허벅지를 슬쩍 갖다대며 두 손으로
보옥의 어깨를 흔들기까지 하였다.

그 바람에 보옥이 손에 쥐고 있던 부채가 떨어져 청문의 발에 밟히고
말았다.

"어머, 내가 부채를 밟았네"

청문이 당황해 하며 부채를 집어드니 부채 살이 서너 개 부러져 있었다.

보옥이 버럭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바보 천치 굼벵이 같으니라구. 장차 네 꼴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나중에 시집을 가서도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굴거야?"

제법 심하게 욕을 들은 청문이 샐쭉해져서 투덜거렸다.

"요즈음 도련님은 걸핏하면 화부터 내신다니까.

습인 언니를 발로 차지 않나"

그러면서 보옥의 마음을 달래려는 듯 청문이 보옥의 손을 슬그머니
잡더니 그 손을 자기 젖가슴 쪽으로 끌어 당겼다.

하지만 지금은 보옥이 여자의 젖가슴 같은 것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어서 청문의 손을 뿌리쳤다.

청문은 욕을 들은데다가 무안까지 당하여 얼굴이 벌개지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