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법개정작업에 시동이 걸렸다.

노사관계의 의식과 문화, 제도와 관행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노사
관계개혁위원회"가 다음달 초순에 청와대내에 설치되게 됨으로써 그동안
미루워져 왔던 노동관계법개정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노동관계법개정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지난 92년4월 최병렬
노동부장관이 전반적인 노사관계제도를 손질한다는 방침아래 노동관계법
연구위원회를 구성하면서부터.

노동경제학자와 노동법학자중심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이때부터 2년여에
걸친 검토와 논의끝에 지난 94년5월 개정방향을 이끌어 냈으나 정치, 경제
논리에 밀려 개정안은 공표도 되지 않은채 사장돼 버렸다.

집권여당과 재계에서는 노동관계법이 개정될 경우 매년 실시되는 선거에
악영향만 미칠 뿐아니라 재계는 노동운동의 활동반경을 넓히는 쪽으로
개정될 경우 산업현장에도 엄청난 혼란을 가중시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폈다.

노동계 역시 복수노조허용에 대해 기존 유일합법단체인 한국노총이 반대
입장을 보인 반면 민노총은 적극 찬성하는등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등 논란을
벌였다.

지난93년 문민정부하에서 개혁노동정책을 펼쳤던 당시 이인제노동부장관
이나 후임 남재희장관이 공식, 비공식으로 노사간 쟁점이 돼온 복수노조
허용이나 제3자개입금지철폐등을 여러차례 밝혔으나 결국 이같은 논리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노동관계법개정은 시간문제가 됐다.

노동관계법개정등을 위한 개혁위원회가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되게
됨으로써 최고통치권자의 개정의지가 확고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재계에서도 달라진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재계의 요구가 어느정도 받아들여진다면 복수노조허용등 그동안 반대해
왔던 사안에 대해 신축적으로 대응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 역시 근로조건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다면 재계가 주장하는 변형
근로시간제나 정리해고제등을 어느정도 수용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법개정에 노사정 모두가 새로운 자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노동관계법개정의 최대쟁점은 복수노조허용, 노조의 정치활동보장,
제3자개입금지등 집단적노사관계와 변형근로시간제, 생리및 연월차휴가제
폐지등 개별적노사관계를 규정한 조항들.

이 가운데 집단적노사관계 조항은 노동계가 여러차례 개정을 요구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등에서도 우리나라에 여러차례
개정을 권고한바 있어 어떤 형태로든 손질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고위관계자도 이와관련, "국제노동회의가 있을때마다 우리정부는
이문제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곤 했다"며 "이제 노사관계가 성숙된 만큼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들 조항은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변형근로시간제나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등 재계가 도입을 주장하는
개별적노사관계 조항 또한 국가경쟁력강화 차원에서 개정이 검토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조건저하등를 이유로 이들 조항의 도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재계는 국가경쟁력강화와 기업의 생산성향상을 위해선 근로의
탄력적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이들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노조전임자수 축소, 공무원의 단결권보장, 공익사업장의 직권
중재조항 철폐, 생리및 연.월차휴가제 개선문제등도 쟁점사항으로 떠올라
노사간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사양측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노사양측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면서도 이들의 반발을 최소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노사관계의 대변화를 꾀하기 위해 청와대내에 개혁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노동관계법개정에 앞서 노사양측의 양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정리작업으로 볼수 있다.

노동전문가들도 세계화 국제화 개방화시대를 맞아 국가의 경쟁력강화와
선진노사관계구축을 위해선 노동관계법개정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노사 양측의 의식과 관행에 대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종전처럼 자기입장만을 고집할 경우 노동관계법개정은 불가능
하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노사가 서로 양보하는 입장에서 "바터"식으로 주고
받을 경우 노동관계법개정이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시말해 복수노조허용등 집단적노사관계에 대한 노조의 요구를 과감히
수용하는 대신 근로기준법등 개별적노사관계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지난친
보호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개정시기 또한 정부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내년 12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노동관계법개정은 워낙 노사간 노노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법개정으로 인한 후유증이 적어도 6개월정도는 갈것으로 노동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법개정이 정치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올해내에 모든 작업을 끝낼 것으로 보인다.

이제 노동관계법개정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법개정이 어느수준에서, 어떤방향으로 이루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윤기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