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 시간만 보내다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다 이건가.

참 아니꼬워서"

"이대리님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니예요.

이대리님이라면 승진 가능성도 없이 매일 하던 일이나 반복한다면
좋겠어요.

회사가 여사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누가 헌신적으로 인생을
투자하려고 하겠어요"

어느 사무실에서나 흔히 목격되는 여성의 직무태도와 관련된 논쟁의
한 장면이다.

조직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여성의 태도 변화가 먼저인가.

최근들어 상당수 기업들이 여성인력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취업여성의 절대적인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사무실내 문화는 어떤가.

실제로 바뀌고 있는가.

여사원에 대한 남성 동료나 상사의 인식은 변화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실무부서에서 여성 신입사원을 받지 않으려는 풍토가 단적인 예다.

영업이나 거래처 관리 등 험한(?) 업무 뿐만이 아니다.

기획 조사 등의 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서장이나 팀장이 여성 부하직원 받기를 꺼린다.

한마디로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 섬유회사 총무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대졸 여성이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여사원은 남자사원에 비해 조직충성도가 훨씬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야근이나 출장 등을 시킬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러면서도 대우는 똑같이 해달라고 합니다.

게다가 좀 쓸만하다 싶어 교육도 시키고 중요한 업무도 맡길만하면
이건 시집을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졸여성을 가급적 피하게 되는 겁니다"

어찌보면 중간관리자들 입장에선 이같은 반응은 당연하다.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이들 세대는 사실 여성을 독립된
일꾼으로 인식해 본 경험이 없다.

동료로 생각해 본적은 더더욱 없다.

고작해야 사무 보조 인력정도로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관리자가 되고 나니까 상황은 달라져 버렸다.

부하직원중에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다.

더구나 신세대 여성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예전처럼 고분 고분하지도
않다.

관리자 입장에선 업무를 지시하기도 어색하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당황스럽다.

여사원의 양적 증가나 직업관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결과다.

따라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차별" 의식이 하나의 관리 패턴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중간관리층의 이같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인사관리나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현안이다.

"인사쪽에선 능력이 우수한 여성을 실무부서에 되도록 많이 내보내려
합니다.

그러나 해당부서에서 안받겠다는데는 어쩔수 없습니다.

입사 성적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더라도 남자사원을 달라고 하는 부서가
많고 그것도 안되면 차라리 내년에 신입사원을 좀 더 배치해 달라고
합니다" (K그룹 인사부장)

이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정과도 관계가 깊다.

LG그룹 인사팀장 김영기 이사는 "한국경제가 제조업 위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이 발전한 선진국과는 달리 전문 여성인력의 설 땅이
좁았다"며 "남성위주의 문화에 여성들이 적응하고 바꿔나가기 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기업에서 여성인력을 뽑는 것은 아직 실험수준을 넘지 못한다.

과연 잘 할수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뽑은 여사원이 일을 잘 하면 다행이다.

자연히 전체 여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성이 실수하거나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여성이기 때문"으로 인식된다.

부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리자는 부하직원으로 들어온 여성 한명으로 전체 여사원을 평가한다.

단순한 업무처리 능력 뿐만 아니라 "성" 그 자체를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영업 등 대외업무에서 여성을 찾기 힘든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문화적
차이에 기인하고 있다.

우선 거래처에서 먼저 여성을 부담스러워 한다.

술자리에서 같이 어울리기도 힘들 뿐더러 여성을 상대역으로 인정하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탓이다.

"나도 알고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커피광고가 있다.

이 광고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여자와 커피는 부드러울수록
좋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무실이든 길거리든 TV에서든 흔히 맞닥뜨리는 잘못된 편견중의
하나다.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이렇듯 일반인의 의식속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침투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더더욱 많다.

투철한 책임감은 기본이다.

무조건적인 남녀평등을 외치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남을 배려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자립심도 길러야 한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은 달리더라도 달리는 대로 일하고 도와야 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여성의 지위는 영영 "특별한"
위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야근도 불사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여성, 지방출장이건
외국출장이건 마다 않고 뛰어다니는 여성,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목청을
높이는 건설 현장의 여성, 묵묵히 맡은 일을 다하는 여성, 이들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숨은 일꾼이다.

또 불합리한 성차별에 실천적으로 맞서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