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무기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이번에 발표된 대통령의 신노사관계에 대한 구상은 한국의 낙후된
노사관계를 한단계 도약시킬수 있다는 의미에서 큰 뜻을 가진다.

이제까지 노.사.정은 우리의 노사관계제도나 관행의 경제사회의 발전된
상황에 걸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큰 틀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곳곳에 불합리한 관행이 있어도 그것을 건드릴때 생길 그나마의 안정을
깨뜨릴까보아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참아왔다.

이번의 신구상 발표는 다른 무엇보다 이러한 구시대적 제도나 관행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시대의 새질서를 마련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어
그 시대적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 된다.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저차적 균형처럼 엉겨있는 상태를 정부가
앞장서고 유도하여 새로운 고차적 균형,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이 나올수
있는 균형, 즉 성숙된 노사관계로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의 구상은 새로운 노사관계의 틀을 짜기 위하여 노개위을 구성토록
대통령이 정부에 지시한 것이 큰 골자이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새 노사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그 때문에 어떤 쟁점이든 과연 국민자체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또 어떤
방향으로 가 줄것을 바라는지를 읽어내고 그것을 구체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 노개위는 어떠한 사전적 견해와 입장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의 노사관계를 기업과 국민경제, 그리고 근로자 모두가 중장기적으로
경쟁력과 보람을 갖게 해주는 것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모든 주요 쟁점이 열려있는 토론의 장에서 토론되어 그야말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의견이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노개위는 전문가만의 구성보다 사회적 원로와 관련단체,
그리고 그들의 견해를 반영해 줄 덕망있는 인사들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모색, 구체적인 법과 제도의 개혁안 마련, 공공부문
노사관계와 노동행정 개혁안등 광범위한 과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각계 각층의 온갖 목소리를 겸허히 경청하되 부당한 주장이나 요구에는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의 대통령 구상발표에 대하여 어떤 특정 법률조문만을 들어 그것이
과연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모처럼의 기회인 이번 개혁은 21세기의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차원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문제를 보고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가지고 근로자들
삶의 질이 한껏 높아지고 직장만족도가 높아지는 그러한 질서를 보장하는
것을 찾아 내야할 것이다.

법과 제도는 가급적 국제적 근로기준과 경쟁상대국이 시행중인 각종 제도를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추는 선에서 과감하게 개정되어야 한다.

노사 어느쪽이든 어떤 특정 조문에서 "양보"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반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로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잘못된 왜곡현상이 지속되지 않으며 그에 따른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지출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의 이해관계 때문에 번연히 잘못된 관행도 고칠수 없다는 주장을
국민들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개혁은 워낙 어려운 일이지만 노사간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은
노동관련 개혁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법.제도나 관행에 문제가 많음은 노사가 함께 인정하고
있다.

또 이러한 불신과 대립을 바탕으로 하는 노사관계로는 21세기에 살아 남기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성숙시킬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기회에 노사양측은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를 국민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개위는 그만큼 그러한 주장을 펴고 토론할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주장은 항상 국민적 판단앞에서 겸허한
견해로 되어야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당사자들의 자세로서는 새로운 노사관계 질서의 창조는 가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주장하고 설득하되 국민적 관점에서 수용되지 않으면 겸허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페어플레이 정신, 그야말로 민주정신이 이번 개혁에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의 개혁 구상은 사실 이대로 21세기를 맞을 수는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나온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신노사 관계는 우리 손으로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