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 제일금융연 금융경제실장/경제학 박사 >

빈 학파(Vienna School)의 경제학자 뵘 바베르크는 금리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내 준다고 했다.

여기서의 문화수준이란 경제활동의 성숙도에 의해 평가되는 한 나라의
"경제적 문화수준"을 의미한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IMF에서 발가되는 국제금융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금리수준이
개도국보다 낮은 것을 쉽게 확인할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금리와
인구의 "경제적 문화수준"사이에는 부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우리나라의 금리수준이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문화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즉, 자본측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듭된 고성장으로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높고, 과거 부동산 등의 자산인플레이션을 경험한
경제주체들 사이에는 인플레 기대심리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규제환경에서 금리의 가격변수로서의 기능이 오랫동안 묶여 있었고,
시장분할로 자금배분이 원활하지 않아 만성적인 자금 가수요를 경험해야
했다.

게다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남북대치 상황까지 겹쳐 높은 위험프리미엄
(risk premium)이 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장금리인 3년만기 회사채수익률이 작년 2.4분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23일에는 10.78%까지 떨어져 이달 들어 세번째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최근 들어 실세금리의 하락행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금리하락 의지를 표명해 왔고
최근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은행예금 지급준비율 인하조치나 재정경제원의
신탁제도 개편안의 추진 배경에도 고금리에 대한 족쇄를 풀어 금리하향
추세를 지속적으로 유도해 나가려는 정부의 의지가 짙게 깔려 있다.

정부가 이토록 금리하락을 유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까닭은 명약관화
하다.

OECD 가입 추진에 따라 자본시장의 개방확대가 불가피한 시점에서 현재와
같이 높은 국제금리차로는 국내금융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고 자본
유입 증가에 따른 원화절상 압력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기업들의
금융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서라도 금리의 하향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금리하락 추세를 93년초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격적인 저금리시대에 진입하는 구조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의 세가지로 집약될수 있다.

첫째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 여건으로 볼때 금리하락의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금년도 경제성장률을 7~7.5%로 유지하고 물가상승률을 4%로 잡는다
해도 명목금리는 11~11.5%에 달하는 계산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수 있다.

둘째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금리정책의 유효성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지준을 인하와 같은 팽창적 금융정책 초기에는 유동성효과에
의해 금리가 하락하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가를 부추기게 되고 중장기적
으로는 합리적 기대에 의해 물가상승률만큼 명목금리가 오르게 된다.

셋째로 금리하락 추세에 따라 대기업들의 금리부담은 줄어들고 있으나
신용상태가 양호하지 않고 시장교섭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게는 고금리가
적용되는 이른바 금리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저금리시대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문화수준"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정부는 금리하락을 위한 거시경제적 여지를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잠재성장률이내의 안정성장의 기조위에 일관성.신뢰도있는
통화정책의 추진으로 인플레기대심리를 불식시켜 물가안정을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저금리정책의 유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팽창적 금융정책과 긴축적
재정정책을 적절히 배합하는 혼합정책의 실행도 빼놓을 수 없다.

시장원리를 외면한 인위적인 저금리정책은 시장의 불확실성만 가중시키므로
지양되어야 하고 금융하부구조의 지속적 개선을 통하여 금리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면서 위험프레미엄을 축소시켜 나가야 한다.

금융기관들에게도 "경제적 문화수준"을 높이는 역할이 기대된다.

저금리시대에 금융기관들의 경영전략은 종전의 자금조달 우선이 아닌
자금운용 위주로 다시 짜져야 할 것이다.

종전의 수신위주 과당경쟁이 고금리를 부추겨 왔으나 저금리시대의
가격경쟁은 금융기관들에게 수익성 위주의 질적 경여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일본계 은행들이 저금리시대에 추구했던 박리다매를 앞세운
양 위주의 방만한 경영이 무슨 결과를 초래했는지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