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원의 경협사업자 추가승인은 북한이 한미정상의 4자회담제의를 수용
하도록 하기 위한 "당근"이라고 볼 수 있다.

통일원은 "이번 승인은 남북간의 경제교류.협력을 증진시켜 나간다는 정부
의 일관된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4자회담과 무관함을 애써 강조했으나
이는 오히려 북한의 자존심을 존중하며 수용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는 분석이다.

우선 승인사업자가 계획하고 있는 경협사업은 투자상한선(5백만달러)을
모두 초과하는 투자규모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통일원은 지난해 고합물산 한일합섬 등 2개사에 대해 투자상한선을
초과한 투자계획을 승인하긴 했으나 이번에는 5백만달러이상의 사업을
"일시에" 3건을 승인, 경협확대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대우전자의 경협사업은 정부가 그동안 북한의 당국간
대화수용을 전제로 승인할 수 있다고 버텼던 것들이다.

정부는 나진.선봉지역에 1만회선의 전전자교환기(TDX)를 설치, 사실상
전화사업을 영위하겠다는 삼성전자의 계획을 SOC사업, 즉 고도의 경협사업
으로 간주해 왔다.

이는 독과점적 지위가 보장되는 통신사업을 우리 기업이 아닌 미국 등
외국기업이 선점할 수 있다는 업계측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고수한
원칙이기도 했다.

이번 조치는 이런 원칙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정부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 "정보통신부가 삼성전자의 통신사업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며 삼성전자의 사업자승인을 위해 관련부처간 협의를
거쳤음을 확인했다.

이번 조치가 발표된 시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은 지난 26일 관영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XX도당이 우리와 미국사이에
해결해야 할 조선반도평화보장문제에 끼어들어 보려고 앙탈을 부리고 있다"
며 지난 16일 4자회담제의이후 가장 강력하게 거부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4자회담을 수용할 경우 주어질 "인센티브"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가 27일 다음달에 식용유(옥수수 기름) 18만 를 북한에 지원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이같은 대북인센티브부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이 먼저 경제제재를 완화하기 전에 한국이 이를 주도함으로써
남북문제에 관한한 한국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북한에 인식시키려 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경협사업자추가승인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삼성전자와 한화가 모두 비슷한 규모의 통신사업계획을 통일원에 제출해
놓은 상태에서 삼성전자만을 승인한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여러 점을 고려해 이번에는 삼성전자를 승인했으나 추후
한화에 대해서도 승인여부가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승인기준을
설명하지 못했다.

삼성은 결과적으로 진출경쟁을 벌였던 한화측을 따돌렸고 국내에서는 진입
장벽이 두터운 통신사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승인이 유보된 10여개사와의 형평성문제도 있다.

북한지역 진출에 관심이 많은 국내기업들중 유독 3개사만을 선정한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협창구의 일원화를 고수하고 있는 정부는 특혜성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공정기준"을 제시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됐다.

이밖에 (주)대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승인을 얻은 사업자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자승인만을 남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정부조치는 민간기업의 경협사업이 아직까지는 대북정책의
수단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허귀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