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아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

"금천아가 집 앞 동네 우물에 빠져 죽었대"

시녀들이 웅성거리며 여기저기 그 소문을 전하느라 뛰어다녔다.

그 소문은 금방 영국부와 녕국부, 대관원 전체에 퍼졌다.

왕부인은 그 소식을 듣자 방문을 잠그고 혼자 깊은 슬픔에 잠겼다.

왕부인은 결국 자기가 금천아를 죽인 셈이라고 여겨져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보옥 역시 자기로 인하여 금천아가 쫓겨나 자살을 했다고 생각되어
그렇잖아도 인생이 허무하던 차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보채와 대옥,습인 들은 금천아가 쫓겨난 내막을 잘 모르고 평소에
그렇게 명랑하던 금천아가 자기 몸을 우물에 던졌을 리 없다면서 우물물을
긷다가 발이 잘못 미끄러져 우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환과 같은 악동들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금천아가 빠져 죽었다는
우물로 달려가 보았다.

가환이 우물에 이르렀을 때는 사람들이 금천아의 시체를 우물에서
건져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금천아의 시체는 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금천아는 돌을 품고 우물에 뛰어들었으므로 깊은 우물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있다가 며칠 후에야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며칠동안 시체가 잠겨 있는 우물물을 길어 먹은
셈이었다.

가환은 우물 주변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다.

"글쎄, 금천아가 마님 방에서 무슨 귀중한 그릇을 깨뜨려서 쫓겨났대나"

"그게 아니고 보옥 도령이 금천아를 겁탈하려고 하는 것을 마님이
보았는데, 마님은 금천아가 보옥 도령을 유혹했다면서 쫓아내었다는 거야"

"보옥 도령이 하도 건드리니까 금천아가 스스로 마님에게 말씀드리고
나왔다는 말도 있던데"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는 가환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얘들아, 가자"

가환이 시동들을 거느리고 우르르 영국부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가 아버지 가정 대감과 마주쳤다.

"이놈아, 왜 그리 바삐 뛰어다니고 야단이냐? 지금은 공부할 시간인데
어디를 다녀오는 거냐?"

가정의 호통에 가환이 몸을 움츠렸다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금천아
자살 소식을 꺼내었다.

"바깥 동네 우물을 지나오는데 사람들이 우물에서 시체를 건져올리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물에 퉁퉁 불은 시체를 말이에요.

그래서 무서워 막 달려오는 거예요"

"누가 빠져 죽었다는 거냐?"

가정은 그 소식을 아직 못 들었는지 황급히 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