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경협의 물꼬는 다시 트이는 것인가.

한동안 얼어붙었던 국내기업의 대북경협전선에 온난기류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첫번째 징후는 삼성전자 대우전자 태창 등 3개사에 대한 정부의 남북
경제협력 사업자 승인.

뒤이어 나온 (주)대우의 남포공단 합영공장 가동계획도 청신호다.

물론 정부에서는 아직도 기업인의 방북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등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계가 감지하는 대세는 경협확대쪽이다.

다만 4자회담의 성사 등 시기만이 문제라는 것.

기업체 대북경협 담당자들은 특히 (주)대우의 합영공장 가동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남북한간 최초의 합작투자사업인 남포공장은 그동안 북한측이 회사명칭이나
경영진 구성문제를 두고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많이 달아 지지부진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타결됐다는 것은 한국기업과의 경협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가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는게 이들의 해석이다.

현재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재계의 대북투자사업은 모두 8건.

이들 승인 사업외에도 30여개 기업이 대북투자계획을 갖고 있다.

그중에도 대북경협의지가 가장 확고한 기업은 현대그룹이다.

그룹산하의 현대경제사회연구원쪽에서 진행하고 있는 북한경제연구도 다른
그룹에 비해 매우 심도있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의 대북경협은 그동안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해 왔다.

현대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가 금강산관광단지 개발 등 워낙 큰 규모여서
"소규모 시범경협"이라는 정부방침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삼성전자에 대해 7백만달러 규모의 통신설비투자를
승인한 것을 계기로 현대의 투자프로젝트도 승인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삼성그룹도 이번에 승인받은 나진 선봉 통신센터 건설을 발판으로 이 지역
에서 비행장건설 고속도로건설 등 SOC투자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또 칼러TV 등 전자제품 조립공단 조성과 자원개발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LG그룹은 2백만달러 상당의 설비와 부품을 보내 20인치 칼라TV의 위탁가공
생산을 추진중이다.

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시제품을 반입한 LG는 경협이 본격화되면 위탁가공
생산을 합작사업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북한내 정유공장 개보수사업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분야
투자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북경협의 선두주자인 대우그룹은 남포공단가동과 함께 대우전자가 가전
제품 조립공장에 대한 승인을 얻음에 따라 합작투자분야를 보다
고부가가치화할 계획이다.

또 명태 조기 등 공동어로사업과 아연광산 개발 등에도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지난 92년말 손명원쌍용자동차사장이 나진 선봉을 둘러보고 온 쌍용그룹
에서는 당시 북한측과 합의했던 <>시멘트공장 건설 <>컨벤션센터 설립 등의
투자프로젝트를 다시 가다듬고 있다.

한화그룹도 그동안 유보돼온 TDX(전전자교환기)공급 등 대북프로젝트를
재가동할 움직임이다.

한화는 특히 삼성전자가 자신들과 같은 분야인 통신설비분야에서 사업승인
을 얻은 점을 들어 형평성 차원에서도 곧 사업자승인을 얻을 것으로 기대
하고 있다.

이밖에 고합 등 그동안 총수가 앞장서 대북경협을 추진해온 기업들과
대동화학 영신무역 등 중소기업들도 본격적인 투자사업에 나설 채비를
갖추는 등 재계의 대북경협은 새로운 활기를 찾고 있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