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제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역사속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민족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데 연유합니다.

따라서 민족정체성이 확고했던 조선후기, 특히 18세기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소중한 작업이지요"

정옥자서울대교수(국사학)가 조선후기 사상사의 알맹이들을 현실문제에
대입시켜 써내려간 칼럼을 모아 "역사에세이"(문이당간)를 펴냈다.

저자는 "역사학자의 세상 바라보기" "삶의 뜰에서" "5분 단상" "우리
사회의 자화상" "민족문화의 탐구" 등 총5장으로 구성된 에세이집을 통해
역사 전반에 걸친 폭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이책은 또 한때 문학소녀를 꿈꾸던 저자의 감수성이 깊이있는 역사연구
및 오랜 사색과 결합돼 차분히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규장각 장서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습니다.

규장각 장서를 한권한권 섭렵하며 한국사연구의 틀을 잡는데만 15년이상
걸렸습니다.

학문의 과정을 체와 관으로 구분한다면 지금쯤 미력하나마 역사를
공부하는 하나의 틀(체)을 잡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30대중반에 대학원 문을 두드린
늦깍이 학생이었던 정교수는 한창 나이의 젊은 동료들과 경쟁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역사서를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조선후기사는 꼭 제 전공이라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특히 18세기는 세련된 문화양식은 물론 인간중심의 문화, 더불어 사는
사회상 등에서 조선시대문화의 최전성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두차례 국란을 겪은뒤 조선사회는 민족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17세기에 시작된 그같은 노력의 결실이 18세기 문화로 만개된 것이지요"

93년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일지사간)를 펴낸 정교수는 이번 에세이집에
이어 내년에 조선후기 문화의 실체를 분석한 연구논문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제목은 "조선후기 정체성의 정립과정"이나 "조선후기 문화자존 의식사"
등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역사연구는 역사관 세계관으로 일컬어지는
관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이 서있지 않으면 표피적인 분석과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서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정립한
책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한사람의 역사연구자로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81년부터 모교교수로 재직중인
정교수는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조선후기 문학사상사" "조선후기 지성사"
등의 저서를 냈다.

< 김수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