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0개의 전문상점과 하루 5만~10만명에 이르는 유동인구로 국내 전자
제품시장의 메카로 군림해 온 용산전자상가.

올해로 상가조성 10년째를 맞는 용산전자상가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불법제품이 난무하고 가격도 믿을 수 없었던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치고 전자유통의 중심지로 재탄생하려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는 90년대 들어 커다란 시련에 직면해 왔다.

대우통신과 힘을 합친 세진컴퓨터랜드,해태전자의 소프트타운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컴퓨터 양판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해온데다 서울시내의 전자상권
마저 동서남북으로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계열 컴퓨터유통업체들은 회원제 할인점, 컴퓨터 도우미제, 구형PC
보상판매제등 새로운 판매기법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PC나 가전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사도 "가격"에서 "서비스"와
"편리성"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용산상가의 트레이드마크격인 "가격이 싸다"는 점만으로는 더이상 경쟁에서
앞서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같은 시장환경의 급변속에서 용산상가는 전자유통의 중심으로 계속 번성
하느냐 아니면 변방의 조그만 시장으로 쇠락해 버리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의 상인들은 상가부흥의 열쇠를 "애프터서비스 강화" "불량
복제품의 거래근절" "전문상가로의 탈바꿈"등에서 찾고 있다.

애프터서비스 강화를 통한 "고객만족"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나선 곳은
선인상가다.

컴퓨터와 관련부품 도매상가인 선인상가는 지난해 10월 용산 최초로 공동
애프터서비스센터를 설립했다.

이 상가는 상가에서 판매된 모든 컴퓨터제품에 대해 3년간 품질을 보증하고
무상수리를 해주고 있다.

올들어서는 터미널전자쇼핑상가에 공동 애프터서비스센터가 들어섰다.

오는 6월에는 전자랜드에도 애프터서비스센터가 설치될 예정이다.

지난 3월 결성된 전국컴퓨터총연합회(전컴련)도 애프터서비스 강화에
적극적이다.

전컴련은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중소 컴퓨터상인들의
모임이다.

전컴련은 전국에 28개의 지부를 만들어 각 지부별로 애프터서비스센터를
개설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회원업체에서 구입한 컴퓨터제품은 전국 어디에서나 무료서비스
를 받을수 있도록 추진중이다.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불법 불량제품과 바가지상혼이 난무하던 거래질서
에도 메스를 들었다.

전컴련을 중심으로 용산일대에서 정품소프트웨어 사용운동을 펼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상인들은 또 올들어 호객행위로 손님을 유혹하거나 바가지씌우는 행위를
자율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상가내에 이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자율단속인원을 배치시켜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뿐만아니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제품을 살 수 있도록 믿을수 있는 가격
체계확립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자랜드를 포함한 500여 점포들은 최근 한일정보통신과 태승정보개발이
PC통신에 제공하는 "용산전자상가 가격정보"서비스에 제품가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상가내 표준가격이 형성돼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쓸 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상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애프터서비스 강화, 불법 불량제품근절 등에 못지않게 용산전자상가
특유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 다른 경쟁업체들과 차별화해야 용산상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게 지배적 견해이다.

전자랜드 3층 컴퓨터상가는 최근 메인보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엔코더 CAD 멀티미디어전문점 등으로 점포를 분류, 고객들이 전문적인
상담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반 컴퓨터대리점이 제공하기 힘든 전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고 계속적인
고객과의 만남을 통해 각종 기술적 조언을 할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권영화 전자랜드 컴퓨터상우회 부회장은 "최근 조립PC상들이 메이커대리점
으로 많이 바뀌고 있지만 자기 개성에 맞고 호환성이 높은 PC를 조립해
사용하려는 소비자들은 꾸준히 존재한다"며 "전자상가만이 이들 고급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상가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이벤트나
판촉기법도 늘어나고 있다.

선인상가는 매주 토요일 컴퓨터제품을 기존 가격보다 할인판매하는 "토요
시장"을 열어 컴퓨터마니아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중고PC위탁판매도
해주고 있다.

용산상가 상인들은 오는 6월에 중고컴퓨터 경매행사도 열 계획이다.

9월에는 모뎀 프린터 PC 등 정보통신기기를 한데 모아 싼 값에 판매하는
용산대축제도 기획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정작 이들 소비자에게 얼마나
어필할수 있는가는 그동안의 잘못된 상거래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상인들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용산전자상가가 진정한 전문상가로 탈바꿈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아직도 싼 가격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상당수 존재하는게 사실이다.

이와 함께 전문상점에 대한 고급수요자들의 욕구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현대화된 판매방식과 공정한 가격체계가 확립돼야 가격메리트를 쫓는
소비자들은 물론 전문 사용자층을 모두 평생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게
상인들의 한 목소리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