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비치는 구속집행 명사들 가운데 심심찮은 단골이 은행장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사회 모순의 한 단면이다.

경제에 대한 금융의 기능으로 보나, 사회통념상 은행의 신인도로 보나
그 정점인 행장들의 흔한 비리 발로는 국민에게 뭣인가 크게 잘못됐다는
당혹감을 준다.

사실 은행돈 빌리는 자체가 특혜인 한국의 만성적 자금초과수요 상태에서
은행 문턱은 높을수 밖에 없었고, 음성 커미션 수수는 상식에 속해 왔다.

그런 중에도 업무 특성상 권한의 거의가 행장1인에 집중됨으로써 사건이
터졌다 하면 한건당 뒷거래는 억대쯤은 보통이어서 안팎에 주는 충격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좀더 솔직하자.

금액의 다과간 은행 돈을 빌리면서 상응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관행적
현실을 누가 부인하는가.

그 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털어 먼지 안나는 금융인이 존재하기를
기대하기란 힘듦을 인정해야 실마리가 풀린다.

이런 기초위에 마치 잘못 쌓아올린 벽돌같은 제도적 관행이 행장등
은행인사에 대한 정-관개입, 정부정책적 예금유치 과열의 부작용, 70년대
중반 이후 은행급여의 비현실적 억제 등이다.

잡다한 현상 가운데도 이 몇가지가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고 거액 커미션
수수는 정부의 기강쇄신 주기가 돌아오면 빙산의 일각처럼 수면위에
떠오르곤 한다.

근본에 있어 관권으로부터의 금융자율화가 선결과제란 점은 수십년
지적돼온 그대로다.

하지만 자율화 핵심인인사-금리 자율화는 외형상 진척이 보이지만
내용면에선 오십보 백보다.

행장추천위 제도만 해도 추천위원 인선 과정부터 관개입의 고리가 맞물려
있다.

요행이랄까.

올들어 자금수요가 급작스레 진정돼 은행돈 세일이라는 한국 초유의
현상이 빚어진다.

자금수요 위축이 바람직한가는 차치하더라도 대출자체가 특혜인 현실이
시정될수 있다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모처럼의 호기가 온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근본이 잘못된 것은 시정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은행장 선발만 제궤도에 올라도 일의 절반이 풀리는 셈이다.

정치 힘을 빌려 공금고 열쇠를 거머쥐면 이미 악순환은 시작이다.

검찰이 인지되는 단서에 의존, 사건을 터뜨려 본들 당하는 사람은 권력
눈밖에 남이나 운나쁨 탓만 하고, 비리는 더 속으로 스며든다.

또 업무의 성질, 특히 현금을 다루는 은행원들에겐 급여나 업무비용을
줄만큼 주는 법이다.

국책은행보다 훨씬 많다는 시은 행장의 총연봉 7,000만원은 책임, 대기업
수준에 비해 크게 밑돈다.

업무추진비 소요를 인정하면서도 예산으로 뒷받침하지 않을때 직책을
포기치 않는한 무슨 돈으로든 쓸수밖에 없다.

주인없는 은행경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뒤처진 금융기법을 만회하는 일은
한계에 다다른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왕도다.

그리고 그 길로의 열쇠는 정권이 쥐고 있다.

역대 정권은 나름으로 금융권을 꿀단지처럼 움켜쥐고 후벼파길 그만두지
않고, 정객들은 개별차원에서 자금조달-취직알선 해결처로 은행을
활용하는 한 행장 쇠고랑차는 비극은 끝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