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난뒤 세계각국의 정치권은 국민들의 호된 비판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냉전기간중에 국가안보와 체제수호라는 명분아래 감춰져왔던 부정부패
예산낭비 비능률등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도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이느냐는 문제를
둘러싼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으로 인해 한때 연방정부기능이 장기간
미비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작고 능률적인 정부"를 목표로 정부조직개편 예산제도
개혁 공무원 정원동결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점에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103개 국고보조사업에서 1,000수백억원
이 부당지급됐다는 감사원의 최근 감사결과 공개는 그동안의 정부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정부기관의 예산낭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감사원은 위인설관, 중복투자, 나눠먹기식 변칙예산편성,
부당한 섭외비지출등 갖은 방법으로 낭비된 정부예산이 1,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힌바 있었다.

따라서 미처 드러나지 않은 예산낭비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해마다 엄청난 금액의 국가예산이 낭비되는 까닭은 감사원이
지적한대로 사업계획수립, 예산편성및 집행의 각 단계마다 부정행위가
개입돼 있을 뿐아니라 사업결과를 점검하지 않는 등 사후관리마저 소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질적인 예산낭비를 막을 수 있을까.

다른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두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행정서비스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국민의 피와 땀인 세금을 임자없는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한 예산낭비와
부정을 막기 어렵다.

따라서 행정서비스에도 가능한한 최대한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예산낭비를 막는 지름길이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교롱, 우편, 사회복지 등은 물론 심지어 치안까지
민간회사와 계약을 맺고 비용-수익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얼마전 올해보다 약 14% 증가한 72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면서 삶의 질향상, 공무원 처우개선, 교육환경개선 등을
내세웠지만 그같은 정책목표가 꼭 예산지출을 통해서만 이뤄질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체질화된 조직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무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유도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부패방지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많은 지지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이밖에도 예산낭비요인을 적발하고 개선할 경우 절약된 예산의
일정부분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면"망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같은 이치는 가계나 기업은 물론 나라살림살이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공무원들은 세입과 세출안 맞추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뼈빠지게
벌어서 낸 세금이 낭비되는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4일자).